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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뜨락]난민예수

 

 

이십년 전 미국 메릴랜드주에서 거주했던 적이 있다. 그 때 틈이 나면 가 보던 곳이 워싱톤 DC의 국립 바실리카 성당인데 미국 가톨릭 대학교가 기부한 땅에 지어졌으며 북미에서 가장 큰 성당이기도하다.

평소 가톨릭 전례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한국이민자 1세대 불교 신자인 초로의 교포와 3시간 이상 소요 되는 성탄 전야 미사에 참여했던 적도 있다. 이 성당의 특색은 세계 각국의 성모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특별히 한복 입은 성모상과 안내문이 한국어로 되어 있는 기도실이 있다는 것이다.

노틀담 성당을 갔었던 추억도 수 십년이 지났지만 아직 생생하기만하다. 프랑스의 상징 같은 노틀담 성당의 화재를 보며 인류의 문화유산이 불탄 아쉬움이 크다.

네델란드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보름을 넘게 머물 때 동네의 그 작은 성당도 참으로 아름다웠다. 성당 내부도 고풍스럽고 군더더기 없이 멋진 건축은 작고 아담하였지만 영성을 자극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여러번 개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겠지만, 채광과 조명이 초현대적이였으며 소리의 울림도 좋아서 마을의 크고 작은 음악회가 자주 열린다고 했다.

낯선 도시에서 낯선 언어에 둘러싸여 낯선 예배당에 신자가 아니었지만 혼자 앉아 있으면, 자연히 낯선 곳에서 떠도는 이에게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며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고 한참을 고요한 상념에 젖어 있던 적이 있다.

가장 가난한 자였으며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돌보던 가장 외로웠던 남자, 2천년 전의 예수, 그의 부모도 난민이었다.

예수가 핏덩이 였을 때 피신한 이집트의 초라한 교회도 가본적이 있다. 마리아와 요셉을 부모로 두고 태어난 예수는, 두 살 이하 사내아이를 죽이라는 왕의 명령을 피해 살던 곳 베들레헴을 떠나 남의 나라 이집트까지 갔다.

2000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넘어, 내전을 피해 가족과 함께 시리아를 떠났던 세 살 배기 소년 크루디가 있다. 2000년 넘는 시차를 두고 난민 가족이라는 점에서 두 소년의 모습은 꼭 닮아 있었다.

그러나 아기 예수와는 달리, 크루디는 모든 곳에서 쫓겨나 결국 터키 해변에서 비극적인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한 아이는 살아 인류를 구원했지만, 한 아이는 죽어 받아줄 곳 없는 삶의 비극을 보여준다.

한국전쟁 당시 고향을 떠난 수많은 이북 출신의 피난민과 전쟁 포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아버지도 있었다.

인간이 조국과 고향을 잃는다는 것은 평생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태초부터 이 땅의 주민인양 살고 있는 이들도 피난민의 자식처럼 혹은 고향을 등진 삶의 뿌리가 ‘난민의 기억’ 위에 있다는 것을 때때로 확인해 보아야 한다.

보잘 것 없어 서럽고 힘든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 ‘복음’을 전한 예수와 그의 가족이 한때 난민이었고 그래서 세상의 모든 고향 떠나 고달픈 이들에게 구원이 될 수 있었음을 일깨웠으면 한다.

종교의 기능이 낯선 이에게 관대한 것은 실상은 자신에게 관대할 수 있는 길임을 한 번쯤이라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성당에 가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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