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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마르셀 뒤샹의 ‘기차를 탄 슬픈 청년’

 

한 인물의 움직임이 고속 연속사진 속 형체처럼 여러 겹 겹쳐서 그려져 있다. 마르셀 뒤샹의 1911년 작 ‘기차를 탄 슬픈 청년’이다. 제목을 참조하지 않고서는 관객들은 이 인물이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다. 불 꺼진 공간에 촛불이라도 놓여 있는지 형체는 출렁이며 노랗게 빛나고 있다. 그리고 형체는 은밀한 내면에서 존재하고 있는 환영인 양 신비롭기만 하다. ‘기차를 탄 슬픈 청년’이라는 제목이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기차를 탔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기차를 탔는데 왜 슬프단 말인가. 게다가 인물은 전혀 기차를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걷는 자세를 하고 있으며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체가 기계와 같다는 주장은 일면 맞는 이야기이다. 한 번 욕망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 그것은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와도 같이 내달린다. 존재는 그 속에 몸을 싣고 슬퍼하고 있다. 기차의 강한 흔들림이 존재의 내면을 강타하곤 한다. 그 흔들림은 성적인 욕구와 성적인 행위로부터 발산되는 진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화가가 되고자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서 이런저런 습작을 하고 있었던 마르셀 뒤샹에게 이 작품은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이 작업에 매료된 뒤샹은 그 다음 작품도 이와 비슷한 형태로 완성한다. 단 문학적인 제목을 떼어 버리고 대신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는 자신이 입체파의 경향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시사하는 제목이었다. 형태를 나무 재질을 연상시키는 노랑과 갈색 계열로 채색한 것 역시 입체파의 영향을 보여준다. 사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당대 입체파 화가들의 작품과 이 작품의 차이점을 분간하는 일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뒤샹은 이와 같은 형태의 작품을 하나 더 완성해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2’라 명명하였고 이 작품을 1912년 앙데팡당 전에 출품하고자 했다.

하지만 입체파 화가들은 이 작품이 앙데팡당 전에서 자신들의 작품과 나란히 걸리는 것을 격렬하게 거부했다. 그리고 작품을 전시하려면 최소한 작품명에서 ‘누드’자를 빼라는 조건을 내건다. 보다 못한 뒤샹의 두 형은(두 형 역시 파리에서 화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뒤샹에서 작품 제목을 수정하라고 설득했지만, 뒤샹은 그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택시를 타고 혼자 전시회장으로 가서 작품을 조용히 떼어 왔다.

하나의 유파가 그전의 유파로부터 갈라져 나오는 과정이었다. ‘누드’라는 소재는 그 자체로 많은 화가들의 논란거리였다. 누드화가 틀에 박힌 기성 화가들의 관습이라는 생각이 당시 전위적인 화가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뒤샹의 누드는 관습을 따르는 화가들로부터도 비난을 받았는데, 누드가 누워있거나 서 있지 않고 계단을 내려오는 것은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작품이 누드화라는 것 말고도 비판받는 지점은 하나 더 있었다. 이 작품이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라파엘 전파 에드워드 번존스의 ‘황금 계단’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황금 계단’은 긴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이 줄을 지어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다분히 낭만적이고 상징적인 작품이었다. 라파엘 전파는 프랑스에서 일어난 전위적인 예술운동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던 화파였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2’의 낭만주의적인 느낌은 눈으로 보이는 것 외의 일체를 화면에서 지워버리고자 했던 프랑스 전위 화가들의 필사적인 노력에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었다.

스스로 개방적이라 여겼던 화가들의 폐쇄적인 모습에 실망한 마르셀 뒤샹은 말없이 자신의 작품을 회수함으로써 입체파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 하지만 이후에도 존재의 움직임에 대한 자기만의 고찰을 이어나갔다. 까만 배경 위에 노란 형체들의 움직임을 담은 ‘재빠른 누드에 둘러싸인 왕과 왕비’,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처녀에서 신부로 이행하기’를 연이어 완성한다. 이 시절 그의 작품에는 섹슈얼한 환상적인 이미지가 풍부하게 담겨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다분히 감성적이었다.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린 화가의 혁신 때문에 그 특유의 감성이 자주 가려지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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