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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김밥 파티!

 

 

 

 

 

오늘은 잔뜩 흐린 잿빛 하늘이다. 모처럼 여유 있는 일요일 아침. 딸아이가 서둘러 햄, 어묵, 우엉, 시금치, 계란 지단까지 붙여 내더니, 하얀 밥을 큼지막한 볼에 퍼 담고 참기름, 볶은 깨, 소금, 식초 몇 방울로 간을 한다. 웬일이냐는 내 말에 딸아이는

“잿빛 하늘의 주말이면 종종 소환하시는 엄마 표 김밥 파티!”

하며 깔깔깔 웃어젖힌다. 곧이어 가족 모두가 식탁에 앉아 각자의 김밥을 말며, 먹으며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묵은 김치를 넣은 김밥, 아들은 깻잎과 참치가 들어간 김밥, 딸아이는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는 걸 좋아했다. 남편은 심심하고 깔끔해서 기본 김밥이 좋다고 했다. 각자의 김밥이 최고라며 서로 먹어보라 떠들며 품평회를 하다 보면 영락없이 과식을 하게 된다.

김밥을 싸는 일은 어쩌면 나에게 추억을 소환해내는 어떤 의식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이 그리운 날, 느닷없이 허전한 날, 엄마, 어머니가 보고 싶은 날도 김밥을 싸곤 했으니 말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첫 소풍을 가던 날, 어머니께서 싸 주신 그 김밥의 첫 맛은 지금도 나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간간하게 간을 한 하얀 밥에 빨갛게 볶은 멸치를 한 줄 넉넉하게 넣고 돌돌 말아주신 기다란 김밥 한 줄. 찐 계란, 사이다, 삶은 밤, 왕사탕, 소라빵의 맛을 넘어 나에겐 단연코 최고의 맛이었다. 그 이후 언니가 새롭게 시도한 다양한 재료를 넣은 화려한 김밥에 밀려 좀처럼 맛보진 못했지만 지금까지도 그 날의 그 환상적인 첫 맛을 잊지 못하고 간혹 멸치볶음 김밥을 사 먹곤 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의 김밥 싸기 의식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소풍이나 현장학습을 갈 때마다 작은 도시락에 정갈하게 담은 김밥을 소풍 가방에 넣어주며 느꼈던 그 뿌듯함. 소풍을 갔다 와서 아이가 떠들어대는 오늘의 김밥 맛에 대한 평가까지. 간혹 특별한 날에는 선생님의 김밥까지 정성껏 싸서 보내드리며 내가 얻는 것은 어쩌면 따스한 어머니의 품 속 같은 추억을 소환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다 큰 아이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김밥 파티를 할 때마다 ‘어느 소풍날의 김밥이~’하며 아이들 또한 지난 시간들을 더듬어내곤 한다. 기억 속 그 첫 맛을 잊지 못하고 여전히 아이들과 시끌벅적 김밥파티를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 ‘김밥’이라는 음식 하나로 이어지는 감성이 어쩌면 대를 이어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든다.

요즘 시중에 나와 있는 화려한 김밥들. 야채김밥, 돈까스김밥, 토마토김밥, 참치김밥, 불고기김밥, 고추장김밥, 참치마요김밥, 멸추김밥, 삼겹살김밥, 차돌박이김밥, 갈치김밥 등등. 우리나라는 근대 이후에 먹기 시작했다는 김밥이 그 종류를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영양가 또한 풍성하여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한 퓨전음식으로 발전한 듯 보인다. 특별히 고급스럽게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누구나 지금 냉장고에 있는 어떤 재료로도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김밥이기에 숱한 사람들에게도 더 정감이 가는 음식으로 손꼽히는지도 모른다.

유난히 조심스러웠던 2020년의 봄. 전 세계적인 ‘코로나19’라는 재난 앞에서도 푸릇푸릇한 녹음은 찾아오고 있다. 이 녹음이 더 짙어지기 전에 갖은 야채, 알록달록한 재료들을 듬뿍 넣어 꼭꼭 말아 싼 김밥 정갈하게 담는 도시락을 들고 소풍 한 번 가고 싶다. 그 날은 하늘이 잿빛이어도 좋고 끝없는 푸르름이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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