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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 문화칼럼]639 숫자의 의미

 

 

 

 

 

올해가 안중근 의사의 순국 110주기이다. 지난 3월 26일의 일인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추모식 행사는 조촐히 치루어졌다. 행사 후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에서는 ‘유해발굴 촉구 성명서’ 낭독이 있었고 ‘안중근 의사의 유해발굴을 서둘러 주세요’라는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려 639명의 동의를 받았다.

유해가 지하에서 110년간 있다면 과연 어떤 상태일지 알 수 없다. 중국 여순에 묻혀계신 안 의사의 유해 매장지를 모르는 것도 아닌데 외교적인 절차가 이리도 험난하기만 한지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 2008년의 1차 발굴은 어렵게 성사되었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최초의 안 의사 유해발굴사업으로 의미가 있었다. 안 의사가 순국하셨던 1910년 당시 구리하라 사다키치 (栗原貞吉) 감옥소장의 딸인 이마이 후사코(今正房子) 할머니의 사진 제보로 시작된 일이다. 그런데 그곳은 발굴 후 일본인 묘지터로 밝혀졌다. 실패가 예정된 사업이었지만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닌 게 그곳이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계속 유력한 매장지로 거론된 여순감옥 수인(죄인)묘지를 발굴하지 않은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500m 떨어진 유력 후보지를 발굴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너무도 크다.

이곳이 유력한 이유는 통역사인 소노키 스에키(園木末喜)의 ‘안중근사형집행상황보고서’에 매장 기록이 나온다. 또 이곳에 근무하던 검시의인 고가 하츠이치(古賀初一)가 선임의사로부터 안 의사 묘 위치를 전해 듣고 회고록을 남겼다. 아울러 여순감옥에 근무하였던 반무충(潘茂忠) 등의 연구자들이 지목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당시 관동도독부가 본국에 보고한 최종 문건에도 “안중근 금일 사형, 여순에 매장”이라는 보고 문건이 남아 있다. 이후 고 김영광 의원이 신현만이라는 안 의사 묘 참배자를 만나 인터뷰 후 묘 약도를 그려 남겼다.

그는 이국성이라는 조선족을 만나 안 의사 묘를 참배했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그 장소를 찾아가기도 했다. 이국성 씨는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1958년에 여순감옥 수인묘지를 방문하였다. 안 의사가 그곳에 묻혔다는 것은 그곳의 주민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런 여러 상황을 취재 후 당시 EBS PD였던 필자는 “안중근 순국 백년,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2010년 3월 26일에 방송했다.

정부와 관련 공무원들은 지금이라도 발굴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자신들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가만히 있으면 안될 일이다. 과거와 달리 지금 탐사는 꼭 땅을 파헤치며 발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GPR(Ground Penetrating Radar)조사로 얼마든지 지표 위에서 발굴조사가 가능하다. 심지어 드론 장비를 활용해 상공에서도 조사발굴이 가능하다.

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 현장을 훼손하지 않고 탐사가 가능한 시대이다. 그런 기술을 우리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측에 의뢰하여 그들이 탐사토록 하면 된다.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도 아니고 학술적인 차원으로 접근하여 풀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이런 일을 선입견에 갇혀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1차 발굴 후 12년, 우리는 과연 후손으로서 이대로 있어야 하는지 비록 적은 소수의견이지만 639라는 동의 수를 가슴 깊이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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