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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으로 얻는 행복에 내 인생을 걸었죠”

옛 한일합성 여성 근로자들의 배움터
학교 운영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지원금
졸업생부터 교사까지 십시일반 모금

젊은이 뺨치는 할머니들 배움 향한 열정
졸업 후 발간한 책 들고 찾아와줘 ‘뿌듯’
묵묵히 버팀목 돼준 아내에게 고마워

 

■ 야학 50년 / 수원제일평생학교  박 영 도  교장


경기신문이 창간한 지 18년이 됐다. 누구보다 가장 열정적인 나이가 된 것이다. 


창간 18주년에 맞춰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이들에게 글 배우기부터 검정고시에 이르기까지 배움의 길로 인도하는 등불같은 곳이 있어 찾아갔다. 


25년째 수원제일평생학교를 이끌고 있는 박영도(63) 교장은 어려운 형편에 학업을 중단했던 이들이 뒤늦게 자신의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을 지켜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풍림빌딩 2층에 자리잡고 있는 수원제일평생학교는 1963년에 개교해 58년 동안 어려운 가정형편 등을 이유로 배울 수 없었던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왔다.


대한민국이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진입하던 1960년대 국가재건사업 일환으로 시작된 야학은 당시 배움의 기회가 부족했던 ‘버스 안내양’, ‘공장 여성 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야학이 시작됐다.


수원제일평생학교에도 공장 여성 근로자들의 배움터였다고 한다. 현재 장안구 한일타운에 자리잡고 있던 한일합섬(옛 한일합성섬유공업)에 근무하던 공장 여성 근로자 등을 가르치기 위해 공군 제10전투비행단 군인 공무원과 서울농대 대학생 등이 교사로 봉사활동을 해 왔다.


1990년대에도 야학은 서글픈 시절이었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가며 학당에 나와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는 교실에 느닷없이 수원경찰서 담당 형사가 불쑥 찾아와 학생들을 교실 한 곳에 모아놓고 읽고 있는 책 목록, 공부 내용 등을 적어 제출하도록 하는 방법 등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야학의 주요 기능인 ‘문해교육’에 국가가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14년여 전인 2006년부터였다. 미인가 교육기관으로 인정해줬다.


박영도 교장도 이 학교에서 1994년부터 교단에 섰고 2년 뒤인 1996년부터는 학교 운영을 맡게 됐다고 한다. 9년 전 매교동에서 인계동으로 장소를 이전한 학교는 건물 2층과 3층에 4개 교실이 있다.


매일 ‘오전반’(오전 9시 30분~낮 12시 30분)과 ‘오후반’(오후 1시 30분~4시 30분), 퇴근시간 이후 검정고시 준비생들을 위주로 공부하는 ‘저녁반’, 3개 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말에는 지역 고등학생들이 멘토로 할머니들의 공부를 돕는 등 학습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좁은 교실에 부족한 환경이지만 수원지역은 물론 용인, 오산, 평택, 안양, 군포 등지에서 학교를 찾는 재학생은 250명에 달한다.


수원제일평생학교를 운영하는데 건물 임대료, 시설 유지비, 상주 근무자 인건비 등 연간 2억원가량이 지출되고 있지만, 교육청과 시·교육부 등으로부터 평생교육 분야 지원금은 전부 1억원 수준이고 나머지는 졸업생과 교사 등이 십시일반 모금한 돈으로 운영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야학은 ‘70~80대 연령의 여성이 대부분인 학생들에게 늦게나마 배움의 기회를 드리고자 평생학습 시대로 진입하는 플랫폼’이 되고 있다. 한 글자라도 더 배우기 위해서라면 대중교통을 몇 번을 갈아타고라도 찾아오는 할머니들의 배움을 향한 열정은 그 누구보다도 뜨겁다고 한다.


박영도 교장은 “할머니 학생들은 처음 글 배우기 때에는 쑥스러워 하시다가도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면서 당당해진다”며 “배움을 숨기다가도 오히려 주변 할머니에게 권하기도 하고, 대학 입학까지 하는 할머니도 계셨다. 담당 선생님과 함께 뿌듯해 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의 80%는 비문해자이고, 초등학교 졸업 수준은 10%, 중학교 졸업 수준은 아주 미약하다”며 “시니어 대학을 통해 인문학, 예체능 활동, 컴퓨터 교육, 한자, 영어까지 배우고 있고, 20%는 고입과정을 거치고, 10%는 대입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졸업생이 등단한 뒤 자신이 낸 책을 들고 왔을 때에는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박영도 교장은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건너와 야학에서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중학교 과정을 졸업하고 다른 야학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신 분인데, 나중에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오롯이 담은 책을 내어 등단까지 한 졸업생이 있었다”며 “문장이 수려하셔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다른 졸업생들도 자신이 낸 책을 갖고 찾아올 때도 있어 뿌듯했다”고 기뻐했다.


야학 학생들이 주로 할머니들로 채워지면서 야학의 기능은 단순한 배움의 기회 제공뿐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해줘야 될 의무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장은 “학생 대부분이 독거노인인데 막상 돌아가시면 상주를 맡아야 하고, 병원에 입원하면 보호자도 자처해야 할 정도로, 학교 공동체가 아닌 가족 구성원이 됐다”며 “이제 학생들에게 있어 배움을 중단시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한다. 등교 자체가 그 분들의 안녕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박영도 교장은 “배움으로 인해 얻는 행복을 나눠주고 싶은 삶을 통해 배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등불을 밝혀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며 “묵묵히 항상 내 판단을 이해해주고 버팀목이 돼준 아내에게 고맙다”면서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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