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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보이지 않는 적

지금 세계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본래 보이지 않는 존재물에 공포를 느껴왔다. 예를 들어 잡귀 잡신이 그러했다. 귀신은 보이지 않으니 조금만 부정한 일을 저지르면 재앙을 불러온다고 믿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귀신을 몰아내는 온갖 비방술에 애를 썼다. 


문명이 발전하고 첨단기술이 만연한 오늘날에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앞에 국력을 소모하고 있다. 정체는 알고 있으나 그걸 막을 방도가 없다. 기껏 할 수 있는 게 마스크를 쓰고 바깥출입을 삼가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도 거리를 두고 만나야 한다. 이 고약한 질병 앞엔 강대국도 맥을 못 쓴다. 어떤 강대국의 지도자도 이번 사태를 잠재울 수 없었다.


영웅이 필요한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똑똑하고 영리하며 유능한 사람이 우매한 민중들을 인도하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지금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가장 안전한 길은 자신이 자기를 지키는 길밖에 없다. 기업도 나라도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 


이럴 때 생각나는 우화가 있다.


어느 왕국에 나이 많은 임금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임금은 한 신하를 거느리고 정원을 걷고 있었다. 그때 정원 연못 위에서 한 무리의 까마귀들이 우짖고 있었다. 왕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까마귀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왕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궁금해서 그러네. 자네 혹시 우리 왕국에 까마귀가 몇 마리나 사는지 아는가?”


그 말에 신하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까마귀 말씀이오니까! 우리 왕국엔 모두 칠만 육천 오백스무 두 마리의 까마귀가 살고 있습니다.”
임금은 신하의 망설임 없는 대답이 미심쩍었다. 그래서 신하에게 말했다.


“그 말이 정말인가?”


“어찌 거짓말을 아뢰오리까?”


임금은 신하를 믿지 못해 다시 물었다.


“그보다 많은 까마귀가 산다면 어찌하겠나?”


그러자 신하는 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보다 많은 숫자라면 그들은 이웃 나라에서 놀러 온 까마귀들입니다.”


왕은 그 말이 또 못 미더워 되물었다.


“그럼 그보다 더 적은 숫자라면?”


“보나 마나 우리 까마귀들이 이웃 나라에 여행을 간 것입니다.”


왕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 창궐하는 바이러스를 저지할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데 이 질병을 물리칠 명쾌한 명약을 찾는 일은 마치 나라 안 까마귀 숫자를 헤아리는 일만큼 우매한 일이다. 


형체도 없는 이 질병이 두려워서 사람도 만날 수 없고 하던 일도 멈추고 있다. 한두 달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던 바람도 허물어졌다. 날이 밝으면 아침인가 하고, 해가 지면 또 하루가 저무는구나 하고, 모두가 그렇게 고독병과 투쟁을 하고 있다. 희망도 바람도 안개 속에 머물고 무기력증에 젖어있는 우리의 일상은 언제쯤에나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에 스러지는 목숨이 참 허망하다.


우리 모두 개인위생에 신경 쓰면서 밀집 밀폐된 공간을 찾지 않는 길만이 이 질병에서 벗어나는 방도이니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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