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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 문화칼럼]한국영화 101년의 시작

 

동영상의 발명은 에디슨에 의한 것이지만 영화의 기원은 프랑스의 루미에르 형제가 그랑 카페(Gran Cafe)라는 상영장, 바꾸어 말하면 극장에서 단편 다큐멘터리들을 상영한 1895년 2월 28일이다.


그리고 여행가 겸 영화제작자인 버튼 홈즈가 내한하여 한국의 여러 풍광을 촬영한 시기가 1899년이다. 1903년에는 한성전기회사 창고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근대식 공연장인 종로의 단성사가 건립된 것이 1907년, 우미관이 건립된 것이 1912년이다. 단성사는 1918년 활동사진(영화) 전용 상설관으로 바꾸어 재개장한다. 당시의 극장 시설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인데 외관은 그렇다 치더라도 고 전숙희 작가에 들은 바로는 극장 바닥에 가마니가 깔려 있어 거기에 앉아서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1919년 10월 27일에 드디어 한국영화 사상 첫 영화인 다큐멘터리 ‘경성전시의 경(京城全市─景)’이 상영된다. 그리고 김도산, 이경환, 윤혁이 출연한 연쇄극 ‘의리적구토(義理的仇討)’가 공연되며 극중 스크린에 야외 촬영 장면이 상영되며 한국영화의 기점이 되었다.


‘경성전시의 경’은 연쇄극을 촬영하며 제작한 서울의 명소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로 한강철교, 장충단, 청량리, 영미교, 남대문 정차장, 독도(뚝섬), 전곶교(살곶이 다리), 전차, 기차, 자동차, 노량진, 공원 등이 소개되었다.


연쇄극은 연극 공연 중 그 일부 야외장면을 촬영하여 영사막(스크린)을 내려 상영하는 형식이다. 이를 영화로 볼 것이냐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그러나 이 날 한국영화 사상 첫 다큐멘터리인 ‘경성전시의 경’이 상영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영화의 기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1966년, 영화계 원로들의 제안을 공보부가 받아들여 이것을 기점으로 1919년이 한국영화의 출발점으로 정하여진다. 이후부터 ‘의리적구토’가 공연된 10월 27일을 영화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한국영화의 초창기 필름들은 현존하지 않고 모두가 신문자료, 잡지자료를 인용한 연구들뿐이다. 하다못해 한국영화를 조선영화로 호칭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에 일본인들이 조선인, 조선어, 조선영화로 차별하여 불렀기에 아무 생각 없이 받아쓰기를 한 결과이다. 물론 조선총독부, 조선은행 등 고유명사는 어쩔 수 없지만 한국영화를 조선영화로 불러서는 안되는 일이다. 일제의 용어인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꿔 부르고 있지 않은가? 이는 향후 연구자들에 의해 차차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


1919년 3·1운동 이후 1920년 6월에는 봉오동 전투가 있었다. 당시 독일에서는 표현주의 영화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 개봉되었다. 세계는 재즈로 대변되는 새로운 패션의 문화시대가 만개하였다. ‘암살’, ‘항거’ 등 한국영화의 시대 배경이 된 해이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연쇄극으로 박승필 제작, 김도산 감독, 미야가와 소우노스케(宮川早之助) 촬영 편집의 ‘의적(義賊)’, 이기세 제작 각본 감독, 이필우 촬영 편집의 ‘지기(知己)’, 이기세 제작 감독의 ‘장한몽’이 있다. 큰 성공을 거둔 ‘장한몽’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금색야차’를 원작으로 만들었으며 이후 6차례나 리메이크 된 한국영화의 단골소재이다.


2020년 새로운 한 세기를 맞아하는 해에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를 겪고 있다. 한국영화 및 극장가에 위기감을 조성하는데 새로운 출발을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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