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아 멈출 것 같았던 코로나 판데믹은 각국의 다각적인 노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끈질기게 인간을 괴롭히고 있다. 사람들의 생활방식이나 사고 체계의 변화를 강요하는데서 나아가 국가 경제나 세계 경제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 같은 안팎의 괴로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려는 인간의 염원은 백신개발 경쟁으로 이어져 27개가 임상실험을 할 정도로 강대국 간의 자존심을 건 ‘전장’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중국은 폐쇄된 휴스턴 총영사관을 ‘백신 개발정보를 빼내기 위한 스파이활동 거점’으로 삼아 ‘모래알스파이 전략’을 전개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으며, 선거를 코앞에 둔 트럼프 대통령은 백신개발을 열세인 선거판을 뒤집을 수 있는 회심의 카드로 인식하고 백신개발 업체가 상당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영원한 짜르를 꿈꾸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세계 최초로 백신 개발 성공” 발표를 기화로 자신의 통치기반을 다지려 하고 있다. 가히 ‘백신개발의 정치성’이 만개하고 있다.
코로나 장기화는 군사적 충돌 양상도 바꿔놓고 있다. 지난 6월 중국은 히말라야 분쟁 지역에서 인도군과 충돌하면서 기습의 시기를 “인도가 코로나로 고역을 치루고 있는 상황”을 악용했다. 인도가 코로나에 대처하느라 군사적 대비태세가 소홀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코로나를 명분으로 한 사이버 공간의 전장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의 무정부성이나 익명성을 이용하여 경쟁국이나 손 보고 싶은 국가들에 대한 가짜뉴스 살포, 영향공작과 같은 심리전 공작과 더불어 주요 기관에 대한 해킹 공격까지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2020년 6월 호주 수상 스캇 모리슨(Scott Morrison)은 “정부 부처와 기업들이 심각한 사이버 공격을 받고 있으며, 공격자는 특정 국가 후원을 받는 치밀한 행위자”라면서 중국을 그 배후로 지목한 바 있다. 미국 역시도 “중국이 코로나 사태를 이용하여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고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주변 국가들을 위협한다”고 믿는다. 이를 놓고 일부 학자들은 “코로나가 지정학적 긴장을 돌처럼 더 단단하게 한다”고 지적할 정도다.
‘백신 민족주의’도 주목받는 화두이다. 단순히 생각해도 개발하면 초대박이다. 수요자가 80억 인구이기 때문이다. 또 국가의 헤게모니력도 증가된다. 개발하지 못한 국가 지도자들이 자국민을 살리기 위해 개발국을 상대로 애걸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필리핀의 사례가 이 가설을 실증해 준다. 두아르테 대통령은 지난 7월 시진핑 주석에서 전화를 걸어 “필리핀이 먼저 코로나 백신을 획득하거나 구매할 수 있도록” 요청하면서, 그 반대급부로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취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렇듯 백신개발은 국내는 물론 국제 정치역학도 바꿀 수 있다. 백신이 개발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개발한 백신을 특정국가가 자국민 먼저 살리기를 내세워 독점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동맹국에 먼저 공급해주고 적대국에 제대로 공급해주지 않는다면? 자국민이 죽어 가는데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코로나 앞에서는 동맹도 소용없다는 냉엄한 사실을 지난 3월 독일이 보여주었다. 독일은 유럽지역이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의료제품 수출을 금지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은 정보기관이 코로나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코로나와 기후위기로 상징되는 비전통적 안보위협(신안보)이 군사력이 중심이 된 전통적 안보위협 못지않게 국가안보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음을 실증했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도 서훈 전 원장체제가 들어설 당시 비전통적 안보위협을 다루는 기구를 새로 설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기구가 코로나가 종결되고 있지 않은 이 시점까지 무슨 일을 했고, 국가정보기관으로서 국가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미국 CIA는 지난 3월 미국 내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할 즈음 트럼프 대통령에게 코로나의 발생과 그 위험성에 대한 정보보고를 한바 있으며, 모사드는 코로나를 보건안보위기로 설정하고 정보자산을 의료장비와 제조기술 수집에 투입하여 이스라엘의 코로나 진정에 기여했다.
이렇듯 주요국 정보기관들이 코로나와 관련된 정보활동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데도 한국의 정보기관은 강 건너 불 구경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정원은 지난 8월초 새로운 원장체제로 바뀌었다. 대공수사권 마저 ‘박탈’ 당하는, 또 다른 위기에 처한 이 현실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코로나와 같은 비전통적 안보 대상에 대한 정보활동 강화는 더욱 요구된다. 이를 통해 ‘대북접대원’이니 ‘대북협력원’과 같은 오명을 벗고 진정 국가를 위한 정보기관임을 실력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