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김규현 국정원장 등 윤 정부 1기 국정원 지도부가 퇴진하고 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되고 있다. 새로 지명된 원장을 중심으로 이미 임명된 1차장과 2차장 등과 함께 2기 국정원을 이끌어갈 것이다. 김규현 전 원장은 취임이후 민주노총 일부 간부 등의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 소위 신영복체 원훈 교체 등 국정원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조치를 단행하는 성과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국정원의 에너지를 집약해 나갈 조직과 인사 관리능력에 대해서는 항간의 비판대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사실상 경질’이라는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되었다. 윤 정부 출범 약 2년이란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 꼴이다. 정부 출범초기 전광석화식 조직 개편과 인사를 단행했어야 함에도 ‘화합’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에 예속되어 시기를 일실하여 오늘의 사태까지 이르렀다. 김 원장체제의 난맥상과 문제점은 2기 국정원 지도부에게는 자연스럽게 반면교사의 역할을 한다. 이 점에서 몇 가지 고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국정원을 ‘자유민주주의 수호 전사’로 키워나가야 한다. 영국 정보기관이 제 갈 길을 찾지 못하자 러시아 정보기관이 “영국 정보기관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일이 최우선 목표여야 하
지난 10월 7일 하마스의 전격적인 기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이란의 개입시사 등으로 5차 중동전으로 비화할 우려를 낳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단계적 작전과 치고빠지기식 작전 상황을 보면, 5차 중동전으로의 비화는 이스라엘 자신들에게도 결코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있는 듯하다. 유엔 사무총장이 이스라엘의 근원적 책임론을 제기한 것이 상징적 사례다. 그래서 앞으로 1개월 이내 휴전으로 갈 것으로 본다. 전쟁 장기화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력이나, 사우디와의 국교정상화를 통해 새로운 중동체제를 구축하려는 이스라엘 모두에게 실이 많은데다, 헤즈볼라까지 “더 깊숙한 개입자제‘를 언명했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두 개의 전쟁 수행 가능하다고 큰 소리치고 있지만, 이를 감당할 여력이 많지 않다는 것도 조기휴전론의 근거이다. 여하튼 보복과 보복이라는 악순환을 부르고 민간인 수만 명이 죽어나가는 전쟁은 하루속히 끝내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면서 이 전쟁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적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정보기관들에게 그 질문의 화살을 쏘지 않을 수 없다. “당신들은 뭐 했느냐?. 정보기관의 역할 중 가장
찰거머리처럼 질긴 여름이 가을에게 자리를 물려주면서 들녘에 벼가 고개를 숙이고, 농민들의 추수에 보답하거나 기다리고 있다. 남한 농민들에게는 연례행사로 벼수매 문제가 관심사항으로 떠오름과 동시에 북한의 작황에 대해서도 궁금해 한다. 2017년부터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2020년에 440만 톤을 기록하고, ’23년 상반기 북한의 대중 쌀 수입(10만 톤 이상)이 2019년 동기간 대비 약 5배 증대한 것을 들어 식량난을 부정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금년 7월까지 아사자 240건 발생을 근거로 최악의 식량위기 발생을 추정(국정원)하는 등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북한 식량난을 분석하는 접근방법이다. 북한의 ‘기근’원인을 주로 공급(식량 가용량 감소)의 문제 또는 접근성(식량획득력 감소) 문제로 인식함으로서 북한주민이 왜 식량 접근성이 약화되었는지, 영양 부족현상에 대한 ‘과정적-미시적’ 설명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권위주의 체제가 제제 정당화와 사회 안정화를 위해 식량 공급 전 과정을 통제하는 전략을 의미하는 ‘양정(food politics)’의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권위주의 체제들은
2023년의 8월, 새벽부터 세차게 내리는 비 소리가 잠을 깨워 곤히 자고 있는 마누라를 뒤로 하고 거실로 향했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보고는 멍해졌다. ’이00 본인상‘이란 알림장이 카톡으로 날아와 있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 동명이인으로 착각했지만, 이내 고위급 탈북자였던 이00임을 알았다. 어!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1년 전에 만나고 매월 초면 이모티콘으로 나마 안부를 주고받았기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생각으로 살았다. ”한 번 연락해야지“ 하는 찰나에 부고장이 마지막 소식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고인과 필자 간에 ‘마음의 접촉지대’가 만들어진 계기는 모대학원 박사과정이었다. 군 출신답게 직선적이고 소탈한 편이어서 북한 현안에 관해 물어보면 성실하게 대답해준다. 실감 있게 북한 상황과 특질을 이해하게 해준 사람이다. 그러기에 경제적으로 도움 주지 못하더라도 정신적으로 나마 남한 생활 중 겪는 고민의 일단이라도 해결해주려 노력했다. 부산지역에 특강 같은 것을 가는 것을 좋아했다. 재북 시절, 인민군이 부산까지 완전히 점령하지 못한 이유가 몹시 궁금했었단다. ”어떻게 생긴 도시인데 우리 인민군이 점령하지 못 했을까?“는 재북시절 풀지 못한 화두였다
오는 8월 15일 한국에서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영화 ‘오펜하이머’가 상영될 예정이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루면서 핵무기를 꺼내들고 위협하고 있고,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총력을 쏟고 있는데다, 중국이 핵능력 확충과 더불어 첨단기술 탈취에 혈안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 영화 개봉은 여러 함의를 던져준다. 오펜하이머는 유태계 독일 출신 물리학자로서 2차 대전 막바지 미국과 영국이 추진한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원자탄 개발을 주도한 인물로서, 1942년 나치 보다 먼저 원자탄을 개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이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오펜하이머는 뉴멕시코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에서 함께 일하던 과학자들을 불러 모았고, 이 중 12명이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사람들이었다. 이 영화에서 오펜하이머 역을 맡은 Cillian Murphy는 “기계주의자로서 신비스러움을 드러내면서도 자신이 발견한 핵분열이 가져올 재앙적 암시”를 실감나게 표현했다는 평을 들었다. 현실에서 오펜하이머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 투하를 목격한 뒤 트루먼 대통령을 만나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혔다”고 괴로워하며 핵무기 대량 저장 재고를 촉구했으나, 트루먼은 참모
지난 6월 중순 모 중앙일간지의 단독보도로 널리 회자된 국정원의 인사파동은 찜찜함과 윤 정부 내내 국정원이 제 갈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커다란 의문을 던져주었다. 윤 정부 출범 초기 새로운 국정원 지도부가 잡은 방향은 대체로 맞았다. 올해 연말로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됨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의 고유기능이자 국가 수호의 근간인 대공수사에 박차를 가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고 방향잡기였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원훈을 되살린 것도 가상한 결단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방향설정이 구체화되고 조직에 내재화되기 위해서는 3급 이상 간부들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정부 출범 초기 인사철학과 인사 방향이 대단히 긴요했지만, 기조실장이 조기에 낙마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데 이어 또다시 인사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도부의 인사철학과 의지가 결여된 때문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국정원은 인사와 조직 운영에 있어 일반 부처와 달리 지도부에 상당한 자율성이 위임되어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정세환경과 국가적 위협이 돌출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인사와 조직 운영에 대한 자율성을 대폭 위임한 것이다. 그러기에 지도부의 인사 및 조직 운영 철학과
수천 년 전부터 자생 또는 타생으로 암약해온 스파이는 한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중대한 역할을 해왔다. 이 만고불변의 법칙 아닌 법칙은 디지털 시대에 들어와서도 형태를 달리하며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보가 그만큼 중요한 때문이다. 러시아 정보기관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앞두고 부식해온 ‘러시아 스파이망’이나, 남한을 전복하기 위한 북한 정권의 끊임없는 ‘남한 내 간첩 부식하기’는 생생한 사례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 간첩망 조직과 가동은 푸틴이 가장 믿는 FSB가 맡았다. FSB는 2021년 7월 경 우크라이나 점령 계획을 준비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FSB 제5총국이 전담하고 담당요원도 20명에서 200여명으로 대폭 증원했다. 러시아 특수부대가 선호하는 수법은, 직파 요원들을 최소화하고 현지에서 고참 첩보원을 포섭하여 자체 첩보망을 가동하는 것이었다. 정치· 경제 분야 고위직을 주 포섭대상으로 삼는다. 일종의 ‘거짓 깃발 포섭 형태’인데, 포섭된 협조자들은 자신의 나라 관료를 대신해서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믿는다. 우크라이나의 여러 고관대작들과 정치인들은 수십 년에 걸쳐 러시아 특수기관과 연계하여 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우크라이나 의회 인민대표인
개전 2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소모전으로 이어지며 ‘인내심 싸움’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배후지원 세력인 서유럽은 단일대오 실종으로 ‘반러연대’가 흔들리고 있는데다, 전쟁장기화로 인한 탄약· 미사일 등이 고갈 상태에 이르러 전쟁양상은 미국 등 서방이 원하는 방향대로 굴러갈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뜻밖의 수혜(미국의 동북아 집중도 저하, 러시아의 중국 의존 제고)를 입고 있는 중국이 종전 내지 휴전을 위한 중재 의사를 비추고 있는 것은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전황과 정세 변화는 서방의 입장에서 ‘플랜B’ 준비와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미국은 먼저 희망적 사고를 버리고 냉혹한 실상을 깨닫는 것이 우선이다. 아무리 우크라이나가 발버둥을 쳐도 러시아군을 패퇴시키거나 극적인 돌파구를 만들 수 없는 중과부적의 실상이다. 미국의 희망은 우크라이나 군이 푸틴을 밀어붙여 푸틴으로 하여금 평화협상무대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지만, ‘반러연대’의 흔들거림 등으로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중립화란 애초의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는 협상장
지난 3월말, 3박 4일이란 짧은 일정으로 일본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를 다녀왔다. 도쿄는 몇 차례 다녀왔지만, 나머지 유수한 도시들은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차일피일 미루다 지인들과 다녀오게 되었다. 마침 윤석렬 대통령의 전격적인 일본방문으로 문재인 정부시절 경색되었던 한일관계에 새로운 물줄기가 형성되고 있었기에 가고픈 열망이 솟구쳤다. 소설 같은 상상일 수 있겠지만, 일본 저변에 흐르는 한국에 대한 감정도 느끼고 싶은 것도 전격적인 투어의 요인이기도 했다. ‘나라’는 고대 우리와 인연이 깊은 곳인데다 경주처럼 일본 고도의 흔적이 상당부분 남아 있어 인상적이었고, 오사카의 대표적 명물인 오사카성은 우리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히데요시를 대하는 일본인의 시각을 간접적으로 웅변해주고 있었다. 오사카성 입구에 히데요시를 배향한 ‘豊國神社(풍국신사)’가 자리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사카 중심가를 비롯한 그 어느 곳에서도 반한 감정이나 물결을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의 심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으나, 적어도 외양만은 그랬다. 오사카 중심가에서는 한국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와
2년차를 맞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시대착오적 고집으로 ‘전쟁의 안개(the fog of war)’가 언제 걷힐지 가늠하기 어려운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막후에선 휴전이나 타협과 같은 외교적이고 평화적인 타협점을 모색하는 시그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으나, 베트남전과 같은 역사적인 전쟁의 교훈에서 볼 때 시간이 걸릴 것은 확실하다. 2년차에 접어든 우크라이나전쟁은 몇 가지 교훈도 던져주었다. 지도자들이 자신의 군사력·경제력 등 능력을 과신하여 상황을 오판하기 쉽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국가 간 단결이 침략자를 분쇄하는데 매우 효험 있는 수단임을 보여주었다. 물론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그 수면아래에는 각국 간에 미묘한 긴장도 흐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독일의 미온적 태도 등이 대표적 사례다. 한편으로 우크라이나전쟁은 디지털 폭탄시대의 서막을 열어가고 있다. 핵무기 경쟁 시대에 가장 큰 억지 용어가 MAD(Mutual Assured Destruction) 즉 상호확증파괴였다. 네가 공격하면 나도 너의 본거지를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논리다. 이 논리 때문에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도 핵전쟁을 피하고 해군력을 통한 쿠바 봉쇄 방법을 택했다. 이제 디지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