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중순 모 중앙일간지의 단독보도로 널리 회자된 국정원의 인사파동은 찜찜함과 윤 정부 내내 국정원이 제 갈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커다란 의문을 던져주었다. 윤 정부 출범 초기 새로운 국정원 지도부가 잡은 방향은 대체로 맞았다. 올해 연말로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됨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의 고유기능이자 국가 수호의 근간인 대공수사에 박차를 가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고 방향잡기였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원훈을 되살린 것도 가상한 결단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방향설정이 구체화되고 조직에 내재화되기 위해서는 3급 이상 간부들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정부 출범 초기 인사철학과 인사 방향이 대단히 긴요했지만, 기조실장이 조기에 낙마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데 이어 또다시 인사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도부의 인사철학과 의지가 결여된 때문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국정원은 인사와 조직 운영에 있어 일반 부처와 달리 지도부에 상당한 자율성이 위임되어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정세환경과 국가적 위협이 돌출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인사와 조직 운영에 대한 자율성을 대폭 위임한 것이다. 그러기에 지도부의 인사 및 조직 운영 철학과 강단 있는 실행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행태를 보면, 과연 윤 정부의 국정철학을 뒷받침하고 대한민국호를 앞서서 이끌어 갈 정도로 조직이나 인사의 틀을 짰는지 의문스럽기 그지없다. 문재인 정부 시절 업무 능력과 평판이 좋지 않음에도 특정지역 출신이란 이유로 인사원칙을 어기고 고속 승진하는 비정상적 특혜를 누렸거나, 정치권에 줄을 대어 몸에 맞지 않은 자리를 차지한 간부는 반드시 솎아내야 한다.
정치권에 줄 대는 법이 없이 묵묵히 헌신한 직원을 발굴하여 승진과 그에 걸 맞는 보직을 부여하는 인사원칙이 앞으로도 조금도 흔들려선 안된다. 역대 정권마다 정치권의 바람을 타고 고속승진하는 행태가 반복됨으로써 소위 백 없는 직원들의 한탄이 호수를 이루곤 했다. 그런데 윤 정부하의 국정원 지도부도 비슷한 행태를 답습한 것을 보고 실소를 넘어 울화가 치밀 정도다. 인사에 특정간부의 의견을 반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정상적인 시스템과 조화를 이루는 선에 이뤄져야 하며, 이를 빌미로 인사원칙의 금도를 깨서는 안되는 것이다.
지도부는 이제부터라도 엄정한 내부기강을 확립하고, 정치권에 줄대는 직원이나 간부는 일벌백계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퇴직 후 직원들이 살아가야 할 제2의 삶을 위한 장치도 보다 확대하고 개발해야 한다. 계급정년제로 일반 부처보다 퇴직이 빠른데다, 제2의 인생을 열어갈 공간도 매우 불충분하다.
군만 하더라도 웬만한 대학에 안보학과와 방산업체 및 군관련 건설업체 등이 적지 않아 제2의 인생길이 비교적 순탄한 편이다. 부끄러운 예로 국정원은 전직 직원이 집필한 책 한권도 사주지 않는다. 도서구입비는 국정원 예산으로 보면 새 발의 피다. 이런 작은 에피소드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퇴직 후 삶의 행로가 순탄하다면 재직시절 인사갈등이 완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퇴직하는 순간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가는 이 쓰라린 문화가 바뀌지 않는 이상 국정원은 ‘서로를 향해 총질하는 참담한 문화’가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