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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의창] 반일과 風·林·火·山

 

지난 3월말, 3박 4일이란 짧은 일정으로 일본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를 다녀왔다. 도쿄는 몇 차례 다녀왔지만, 나머지 유수한 도시들은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차일피일 미루다 지인들과 다녀오게 되었다.

 

마침 윤석렬 대통령의 전격적인 일본방문으로 문재인 정부시절 경색되었던 한일관계에 새로운 물줄기가 형성되고 있었기에 가고픈 열망이 솟구쳤다. 소설 같은 상상일 수 있겠지만, 일본 저변에 흐르는 한국에 대한 감정도 느끼고 싶은 것도 전격적인 투어의 요인이기도 했다.

 

‘나라’는 고대 우리와 인연이 깊은 곳인데다 경주처럼 일본 고도의 흔적이 상당부분 남아 있어 인상적이었고, 오사카의 대표적 명물인 오사카성은 우리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히데요시를 대하는 일본인의 시각을 간접적으로 웅변해주고 있었다. 오사카성 입구에 히데요시를 배향한 ‘豊國神社(풍국신사)’가 자리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사카 중심가를 비롯한 그 어느 곳에서도 반한 감정이나 물결을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의 심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으나, 적어도 외양만은 그랬다. 오사카 중심가에서는 한국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와 명동을 옮겨놓은 듯한 착각도 불러 일으켰다.

 

350여석에 달하는 귀국 비행기는 한국인만으로도 만석이었다. 이 상황을 며칠 간 지켜보면서 윤 대통령의 방일로 불거진 ‘반일 논란’이 오버랩 되었다. 우리 지도자들은 역사를 지나치게 정치 무기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국가의 백년대계보다 정파의 이익에 매몰되어 국가의 미래를 망가뜨리는 것은 아닌가?, 반일팔이는 언제쯤 멈출 것인가? 등 새롭지도 않으면서 반복된 질문을 던져 보았다.

 

역사가 웅변해주는 불변의 진리가 있다. 힘이 약한 국가는 언제든 종속되고 망할 수 있다는 진실이다. 고대에 전쟁에서 패배한 국가의 국민은 삼척동자도 알듯이 노예로 전락했다. 그러나 현대판 노예는 첨단 기술 보유여부가 가른다. 반도체가 상징하는 첨단기술 개발에 뒤져 선진/첨단기술에 종속되면 ‘현대판 기술노예’로 전락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분에서 일본을 이기고 있지 않나. 물론 소/부/장은 일본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반도체는 일본을 추월했고, 자동차는 나란히 어깨를 견주고 있으며, 일본이 자랑하는 벚꽃도 우리가 한 수 위다.

 

교토 호센인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에이스 병력 360여명과 기시다군이 벌인 실내전투에서 생긴 血天井(혈천정)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피 흘린 흔적은 영원히 잊지 않되, 그 설움과 한을 승화시켜 보다 대승적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 젊은이들이 정치인들의 ’반일 팔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 각지를 여행하는 현실을 목도하고 한일 관계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했다.

 

일본 어디를 가도 도시의 청결은 최고이고 몸에 베인 겸손함은 우리가 배워야 할 태도이다. 귀국 행 비행기에서 일본 전국시대를 사실상 평정한 오다 노부나가와 에도 막부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존경한 전쟁의 신으로 불린 다케다 신겐의 잠언을 떠올렸다. 풍·림·화·산 이란 네 글자다.

 

“산처럼 인내하고, 숲처럼 고요히 생각하며, 바람과 불같이 전광석화처럼 행동하라.” 역사의 아픈 교훈은 길이 새기되, 나무보다 숲을 보며 불처럼 행동할 때 그 언젠가 우리가 일본을 ‘현대판 노예’로 전락시킬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망상도 가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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