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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마수걸이

 

오래전이다. 방 한 칸을 세를 주었다. 30대 총각으로 그런대로 순수한 젊은이였다. 그때만 해도 궁핍하던 시절이라 청년은 청계천 가까이에 있는 봉제공장에서 일했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돈을 모으긴커녕 월세 내고 밥 먹고 살기도 빠듯한 모양이었다. 밤이면 리어카를 끌고 개천변에 나가 과일을 팔았다. 과일이란 게 그랬다. 앞으로 돈 받고 뒤로 밑지는 게 과일 장사였다. 하루 이틀 묵혀두면 썩고 멍들고 비틀어진 과일은 버릴 수밖에 없었다.

 

청년은 장래가 빤한 봉제공장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입에 풀칠할 일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 안주인인 나한테 죽을상을 하고서 손을 내밀었다. 돈을 좀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 돈으로 운전면허증을 따서 택시를 몰겠다는 다부진 포부를 털어놓았다.

 

나도 형편이 빠듯했지만, 셋방 청년의 입장이 하도 난처해서 얼마간 돈을 빌려주었다. 청년은 열심히 운전면허 교습장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밤이면 후줄근한 모습으로 들어와 늦은 시간까지 이론 서적을 읽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드디어 운전면허 시험 보는 날이 다가왔다. 긴장한 나머지 마지막 주행시험에서 불합격이 되었다. 청년은 낙담했다. 나는 가끔 먹을 것을 주며 청년을 격려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집념을 가지고 달려든 그놈의 운전 면허시험이 두 번 세 번 볼 때마다 미역국을 먹는 것이었다.

 

낙담한 청년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안주인인 내가 더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이론시험에 붙으면 실기시험에 떨어지고…. 재수 없는 놈은 자빠져도 코 깨진다는 식으로 근 반년 가깝게 그놈의 운전면허시험에 허덕거렸다. 옆에서 보기에도 정말 안쓰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은 화색이 만면하여 마당을 들어섰다. “아줌마 나 운전면허 땄어요.” 청년은 장원급제나 된 듯이 기뻐했다. 당연히 나도 반가웠다. 그런데 또 한고비가 남았다. 막상 택시회사를 찾아가니 운전면허증만으론 택시를 몰수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직업 선택의 폭이 좁았기 때문에 너나없이 택시 드라이버가 되겠다고 지원자가 몰렸다. 그러기를 서너 달…. 하늘이 도왔던지 취업이 되었다.

 

“아줌마. 돈 벌면 그 돈 금방 갚을게요.” 셋방 청년은 마치 돈방석에나 앉은 듯 그날 저녁 기세등등했다. 우리 부부는 청년에게 조촐한 축하 파티까지 열어주었다. 이튿날 새벽같이 문 여는 소리에 바깥을 내다보았다. 청년은 보기에도 산뜻한 운전기사 복장으로 대문을 나섰다. 저만큼 새벽 여명이 깃든 골목길 한구석에 세워둔 택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청년이 탄 택시는 보란 듯이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가 깔린 대로 속으로 빠져나갔다. 어쩐지 내 가슴도 뿌듯해졌다. 마치 나의 남동생인 듯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잠시 후 집 앞에서 사라졌던 청년의 택시 소리가 들렸다. 이상한 예감에 대문 밖을 내다보았다. 청년의 택시가 도로 들어오고 있었다.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

 

“왜 그래요, 총각?” “어휴, 마수걸이에 재수 옴 붙었어.” “그게 뭔 소리예요?”

 

그러자 청년이 기죽은 소리로 말했다. “있잖아요. 첫 손님이 탔걸랑요.” “그런데요?” “막 사거리를 빠져나가는데 교통순경이 차를 세우지 뭐에요.” “왜요?”

 

“깜빡이 등을 안 켰다나 그러면서…. 마수걸이로 벌금만 물고 왔어요. 아줌마 돈 있으면 삼만 원만 빌려주세요.”

 

억장이 무너지는 건 청년의 가슴이 아니었다. 지켜보고 있던 내 가슴엔 만수산 먹장구름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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