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5 (일)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 아픔이 주는 교훈

 

나는 어릴 때부터 약골로 살아왔다. 어디가 크게 아픈 것도 아닌데 심심하면 감기 고뿔이 찾아왔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는 일이라곤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 일 뿐이니 병이 안 올 리가 없다. 허리가 아프더니 어깨도 아프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픈 법이다. 시간이 가면 해결되는 일인데도 마음은 늘 초조하고 불안하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외출을 자제하면서 신경이 예민해졌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난다. 그냥 지나가 갈 일도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 덜컥 겁이 날 때도 있다. 때로는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괜한 걱정도 한다. 잠시 주춤한듯하더니 인터넷이나 텔레비전만 열면 질병 소리다. 핸드폰은 또 어떻고. 종일 삐삐거리며 귀찮게 울려 오는 건 질병 안전 안내 문자뿐이니, 사람마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하며 산다. 종일 집안에만 갇혀 사니 멀쩡한 사람도 병이 들 지경이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하나를 잡지 못하고 아비규환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코로나 19의 공포에 잠겨 있다. 감염을 막기 위해 직장인도 재택근무를 한다. 소위 언컨텍트 문화에 젖어 산다. 그것도 몇 달째이다. 모두가 바깥에 나가길 바란다.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몸은 늘 찌뿌둥하고 마음은 어둠에 갇힌 터널 같다.

 

내 몸을 괴롭히는 이 작은 고통보다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음에 더욱 나를 지치게 만든다. 그러면서 아픈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낮게 라디오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모처럼 아픔을 즐기기로 했다. 아픔은 지나간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잊었던 나 자신을 더듬는다.

 

가득한 욕망과 욕구로부터 철저하게 나를 차단한다.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걸 아픔이 새삼 깨닫게 해준다. 아픔은 또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나는 처음부터 홀로였고, 지금도 홀로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래서 아픈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느 때처럼 제시간에 자고 제시간에 일어난다. 잠시 볼일을 본 뒤 아침 산을 오른다. 그 시간엔 들끓는 열기도 없다. 사위가 조용하고 숲속엔 지나다니는 인적도 드물다. 나는 운동기구에 매달려 땀날 정도의 운동을 하고 산을 한 바퀴 빙 돈다.

 

산에서 내려가면 새로 생긴 아파트 뒤 공원이 있다. 온갖 꽃들과 푸성귀로 오밀조밀 꾸며 놓은 공원 옆 자락엔 수련이 가지런히 떠 있는 작은 연못도 있다. 나는 늘 하던 대로 연못 속의 수초도 보고 이름 모를 잡초들도 살핀다. 아픔이 또 다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만든다. 갈 때마다 무성하게 자라는 잡풀들, 산죽들, 이식해 놓은 화목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아픔만큼 찬란하게 눈을 어지럽힌다.

나는 아픈 눈으로 그들을 찬찬히 살핀다. 그중에서도 무리를 지어 심어놓은 산죽들에 눈이 더 간다. 시들은 가지 위로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참으로 경이롭다. 아프지 않으면 보지 못할 것들을 아픔이 나에게 다른 시각을 입혀 준다.

 

그렇다. 아픔은 사람을 낮은 자세로 끌고 간다. 아픔은 아픔으로 끝나지 않고 아픈 만큼 사물을 보는 통찰력을 끌어 올리는 것 같다. 분명 언젠가는 잡힐 것이다. 그러니 이 아픈 것을 속상해하지 말고 그때까지만 기다리자. 나는 얼마간 이렇게 아픔을 견디며 홀로 있고 싶다. 그리하여 이 들끓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나가면 비로소 아픔에서 벗어나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