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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窓]천국의 포도원

 

새벽 인력시장 풍경을 그려본다. 팔 거라고는 몸뚱어리밖에 없는 사람들이 옹송그린 채 모여앉아 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이들에게 새벽바람은 언제나 살을 에기 마련. 얼른 팔려가기를 고대하며 두리번거리는데, 봉고차 한 대가 다가온다. 시간은 이른 아침 6시, 일당 10만 원 약속받고 한 무리의 일꾼들이 뽑혀간다.

 

남겨진 사람들의 부러움이 산처럼 쌓일 즈음, 9시가 되니 봉고차가 다시 와 두 번째 일꾼들을 태워간다. 낙오된 이들의 입에서 나직이 새어 나오는 한숨. 오늘도 공치게 생겼다. 한데 희한하게도 그 봉고차가 12시에 또 오고 오후 3시에도 오더니 사람들을 데려가는 게 아닌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5시에 와서는 그때까지도 뽑혀가지 못한 채 빌빌거리고 있던 ‘나머지’를 싹 쓸어간다.

 

드디어 저녁 6시, 일당을 계산할 시간이다. 사장이 관리인을 불러 이른다.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챙겨주라고. 오후 5시에 온 사람들이 앞으로 불려 나간다. 쥐꼬리만큼 받겠거니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 10만 원이다. 오, 대박! 그들보다 먼저 와서 일한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한 시간 일하고 10만 원이면, 세 시간 일한 사람은 30만 원? 오전 6시에 와서 온종일 일한 사람은 도대체 얼마를 받는다는 소린가?

 

심장이 쿵쾅대는데, 날벼락이 떨어진다. 모두에게 똑같이 10만 원씩 지급된 거다. 맨 먼저 온 사람들이 화가 나는 건 당연지사. 어떻게 마지막에 와서 겨우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들이 온종일 수고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받을 수 있냐며, 이거야말로 불공정 처사라고 핏대를 세운다. 그러자 사장이 하는 말, “이보시오, 나는 당신을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10만 원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에게 주는 것과 똑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오.”

 

신약성서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흔히 ‘포도원 주인의 비유’로 알려져 있다. 능력에 따른 차별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별나라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성서는 아랑곳없다. 하나님이 주인인 세상에서는 ‘누구나’ 삶을 누릴 권리가 있음을 강변한다. 이 대목에서 ‘온 국민 기본소득’에 눈길이 가는 건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일 터.

 

독일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가 산업혁명의 진원지인 영국에서 노동자 계급의 비참한 현실에 분개하여 공산주의 혁명을 주장했다면, 비슷한 시기의 영국 사상가 존 러스킨은 성서에서 영감을 받아 ‘생명의 경제학’을 부르짖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보다 7년 먼저 세상에 나온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마하트마 간디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책으로 꼽힌다.

 

마르크스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이제 인류에게 남은 숙제는 러스킨의 실험뿐이다. 괴물자본주의의 독주로 코로나 역습을 당한 오늘, 악마의 경제학을 포기하고 생명의 절대적 가치에 복무하라는 그의 외침이 예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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