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이 또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식상하리 만치 단골이슈가 되어 오면서, 동맹유지의 당위성 보다는 이른바 ‘개혁적인 재조정’으로 방향이 잡혀가는 듯하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최근 미국을 방문하여 ‘한미동맹이 양국 관계의 근간’임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미덥지 못한 마음은 여전하다. 통일부 장관의 소위 ‘한미평화동맹’과 같은 말장난으로 치부되는 수사들이 수시로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은 여전히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집권한지 4년차가 되어가고 한미 양국 정상 간 여러 차례의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집권층 일부는 현 시점까지도 “한국의 안보를 위해서 굳건한 한미동맹이 필수적인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미국 쇠퇴론’과 ‘중국 역할론’ 사이에서 갈지자를 걷고 있다. 코로나 사태에 대한 트럼프의 어설픈 대응은 미국의 초강대국 지위에 대한 의문을 가중시켰고, 중국의 경제력 증대와 한반도 통일에의 역할론은 한국의 선택을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한미동맹에 대한 갈등을 ‘쇠퇴 강대국’과 ‘뜨는 국가’, 그리고 ‘포식(predation)’과 ‘파트너십’이란 개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대미 자주노선을 관철하려는 집권층 일각의 소신도 한미동맹 관계에 영향을 주고 있지만, 쇠퇴 조짐을 보이는 미국과 세계 10위권으로 부상한 ‘뜨는 국가’ 한국 사이의 헤게모니적 힘겨루기로 보는 시각이다. ‘뜨는 국가’는 쇠퇴하는 강대국을 더 밀쳐 낭떠러지로 몰아넣거나 강대국 대열에서 밀어 내려 한다. 쇠퇴하는 강대국은 고민한다.
‘뜨는 국가’가 나중에 힘을 배양하여 자신들을 공격하거나, 자신들의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에 대해 양보를 강요하지 않을까 염려한다. 시카고대 미어샤이머 교수가 “강대국들은 적대적인 국가가 사지로 내몰리면 압박을 가중하여 추락의 구덩이를 더 깊게 판다”고 지적했듯이, 힘을 키운 로마가 약화되어 가는 카르타고를 맹공하여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것은 좋은 역사적 사례이다.
‘뜨는 국가’는 두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군사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측면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파워의 신속한 이동을 유발하여 쇠퇴국가를 위협하는 국가이고, 두 번째는 점진적이고 온건한 방법으로 쇠퇴 강대국의 지위를 흔드는 국가이다. 두 번째 유형의 ‘뜨는 국가’는 군사적 모험주의를 피하고 쇠퇴 강대국들의 핵심이익을 건드리지 않으며, 주변 국가들의 눈치도 보면서 힘의 이동을 추진한다. 미국이 쇠퇴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해도 군사력 특히 정밀 무기 분야는 중국 보다 한수 위다. 중국이 이 분야를 추격하려면 10여년이 걸릴 것으로 추산한다. 우리의 선택은 자명하다. 두 번째 유형의 ‘뜨는 국가’의 길로 가야 한다. 한미동맹은 결코 ‘썩은 거래’가 아니다. 아무리 따져 봐도 ‘남는 장사’다.
다른 한편으로 작금의 한미동맹 논란은 오랜 평화에 기인한 ‘숙취현상’이다. 한국이 ‘뜨는 국가’로 부상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도 무방하다”는 여론도 그 세를 더하고 있다. “한국군은 우리 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김정은의 말을 결코 허풍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ICBM · SLBM 실전 배치 및 충분한 핵탄두 확보로 2차 공격능력까지 갖추려는 김정은 정권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태는 자중해야 마땅하다. “우리는 절대 동맹 비용을 내라는 식으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약한 바이든 후보의 당선을 기원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