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부쩍 늘어난 스팸전화로 곤혹스럽다. 상조회사와 대출상담 등을 권유하는 전화가 지속적으로 걸려온 탓이다.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의무적으로 작성했던 수기명부에 담긴 자신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 같다고 판단했다.
A대학교 교수는 "수기명부 작성 이전부터 개인정보 관리를 철저히 했다"며 "코로나19 확산 이후 반복적으로 걸려오는 알 수 없는 전화에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했다.
B대학교 학생 권모(26)씨도 최근 식당과 주점을 방문하고 나서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가 늘어 당황스럽다. 사행성 게임과 불법도박 관련 스팸문자도 쇄도했다. 그는 대학가 근처 음식점에서 작성한 수기명부 때문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수기명부 작성을 하게 되면서 스팸전화가 늘었다는 불만은 온라인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빵집과 카페에 자주 다닌다는 한 커뮤니티 게시판 작성자는 "수기명부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보니, 악용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역시나 스팸이 엄청 오네요. 스팸문자, 스팸전화 난리도 아닙니다"라고 토로했다.
수기명부로 인해 개인정보가 유출됐을 거라는 건 추정일 뿐, 아직 정확한 근거는 없다.
다만 올해 특별한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없었음에도 수기명부 작성이 시작된 이후 스팸전화가 늘었다는 통계는 있다.
KT 그룹사 후후앤컴퍼니는 스팸차단 앱 ‘후후’ 이용자들이 올해 2분기에 556만7038건의 스팸 문자를 신고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10만1892건 증가한 수치다.
후후 측은 소상공인 금융지원과 긴급재난 지원금 신청을 가장한 스미싱 사기가 급증한 원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그럼에도 이전까지는 한 차례도 스팸전화나 문자를 받지 않았던 사람이 받게 된 것은 설명하기 어렵다. 때문에 피해자들은 수기명부가 원인일 것으로 보고 있다.
수기명부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피해는 정부 역시 우려하고 있다. 때문에 지난 11일 개인정보위원회는 ‘코로나19 개인정보보호 강화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수기명부를 작성하는 경우, 성명을 제외하고 휴대폰 번호와 시·군·구만 기입하는 등 개인정보 유출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스팸 전화 관련 피해는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신고를 받아 과태료 부과를 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 제50조를 보면 전자적 전송매체를 이용해 영리목적의 광고성 정보를 전송하려면 그 수신자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조치에도 수기명부 관리는 여전히 허술하게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24일 찾은 수원 소재 카페와 음식점 등 대부분이 수기명부 관리소홀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이 우려되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한 달 전 출입 기록이 남아있는 음식점도 있었다. 방역 지침에 따르면 작성된 출입명부는 4주간 보관 후 파기해야 한다.
카페 점장 김모(30대·여)씨는 "QR코드 전자 출입명부의 사용이 어려운 손님들은 수기명부 작성을 안내하고 있다"며 "(수기명부를) 남 몰래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하려는 손님을 보면 제재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카페 아르바이트생 이모(24·여)씨는 "손님들이 수기명부를 작성할 때, 일일이 지켜보며 감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 관계자는 "일부 매장은 이미 성명을 기재하는 수기 명부 용지를 대량으로 프린트해 사용하고 있다"며 "스팸 문자는 핸드폰 번호만 있어도 발송 가능하며, (수기명부) 사진을 찍어 가지 않도록 매장의 자체적인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 경기신문 = 김민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