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정치화’는 위정자가 자신의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보를 과도하게 각색해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정보왜곡 차원을 넘어 정보조작 수준까지 가는 위험한 상황을 지칭한다. 이는 단기적으로 지배권력에게 도움을 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국가기관이나 국민들의 정보 판단력과 안목에 심대한 타격을 준다. 정보수집하고 분석하는 정보기관이나 국가기관의 신뢰를 실추시킴은 물론 ‘정보’의 권위를 떨어뜨려 국민통합을 저해한다. <묵자>는 말했다. 百人百義 千人千義 非人之義 是以厚子有鬪 즉 모두가 자기가 옳다고 하고 남을 비난하면 결국 처절한 싸움으로 이어진다고 수 천 년 전에 설파했다. 그런 점에서 정보는 사안을 바라보고 해석하는데 있어 등대 같은 역할을 함과 동시에 국민통합적 기능도 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정보의 정치화’의 막장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다. 단적인 사례가 해수부 공무원에 대한 북한군의 총격살해사건이다. 이 모(47)씨의 북한지역 진입을 ‘자진 월북’으로 단정 짓고 그 가설에만 맞는 정보만 취사선택해서 공개했다. 이를 정보계에서는 체리피킹 cherry-picking이라고 한다. 맛있는 부분만 따 먹는다는 얘기인데, 입에 맞는 내용만 공개함으로써 위정자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것이다. 한미 정보당국이 각종 정보자산을 동원해 어렵게 수집한 정보마저도 그 신빙성을 스스로 의심하는, 자해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9월 25일 북한 통일전선부 통지문 발표 이후 국방부 고위관계자가 “첩보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는 발언이 정보의 정치화 현상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코미디이다.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은 “피격 사건과 관련 한미 정보당국이 수집한 것은 조각조각의 불충분한 정보가 아니었으며, 그 중에는 생사를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위치 정보와 그 공무원이 어떤 상황에 빠져있는지 정황증거를 알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중요한 정보였다”고 단호히 반박했다. 현 국방부의 태도는 김대중 정부 시절 제2 연평해전 때 남북 해빙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북한 경비정이 우발적이고 독단적으로 포격했다”고 주장한 것과 판박이처럼 닮았다. 일각에서 지적한 이른바 october surprise(북한 지도부와의 모종의 대형 이벤트)를 겨냥한 처리였다면 더더욱 묵과할 수 없다.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국민 생명도 담보로 하겠다는 것을 보여준 때문이다. 3500여만 명이 죽어간 ’대약진 운동‘을 밀어붙인 마오쩌뚱과 뭐가 다른가. 두 번째 사례는 월성원자로 폐쇄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정보 처리과정에서도 나타났다. 월성원전 1호기 조기폐쇄 과정에 위법성과 하자가 있다는 최재형 감사원장과 현 정부의 기조에 맞추려는 친정부 성향의 감사위원 사이에 감사보고서 채택을 놓고 장기간 힘겨루기한 것은 ‘정보의 정치화’가 관료 사회에 얼마나 만연하고 있는지를 입증해준다. 오죽하면 “산업자원부 관리들이 감사에 저항하고 관련 자료까지 폐기했다”는 충격적 발언이 감사원장 입에서 튀어 나왔을까.
이 점에서 정보를 통치에 잘 활용했던 청나라 옹정제의 정보정치는 귀감이 된다. 옹정제 당시 중앙정부의 관리와 지방의 총독은 내각에 보내는 문서와는 별도로 직접 황제에게 보고서를 올릴 수 있었다. 공식 문서인 題本(제본)과 다른 奏(아뢸 주)摺(접을 접 )이다. 주접은 관리 개인이 비공식적으로 천자에게 보내는 친필 편지다. 단순 문안 인사에서 날씨나 쌀값 보고, 군사상의 기밀도 포함됐다. 옹정제는 지방관이 부임지로 떠나기 전에 직접 만나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현지에 부임한 관리는 알현 때 들은 훈시를 주접에 복창하는 것으로 현지 업무를 시작했다. 틀린 부분이 보이면 옹정제는 붉은 붓으로 하나하나 정정해 발신인에게 돌려보냈다. 이렇게 붉은 붓으로 쓴 황제의 친필서한인 硃批諭旨(주비유지)를 받은 관리는 이를 보관하거나, 남에게 보여줘선 안 되며, 즉시 천자에게 되돌려 보내야 했다. ‘선의의 독재자’였던 옹정제는 매일 밤 20-30 통, 많을 경우 50-60통의 주접을 읽고 유지를 썼다. 옹정제는 모든 관리와 일대일 직보 체계를 갖춰 상호 감시를 제도화하고, 제국의 정보를 통치에 요긴하게 활용했다.
정보의 정치화는 일정 정도 불가피한 측면은 있다. 정보는 정책집행자들의 정책 수행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는 역할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기에 미국의 정보기관이나 관료사회는 ’정보와 정책은 일정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점을 모토로 삼고 있다. 위정자의 견해가 반드시 국가이익과 국가의 미래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법이 없기에 그렇다. 묵자가 말했다. 三公非特富貴遊佚(편안한 일)而擇之也라고 했다. 높은 벼슬은 부귀와 유희를 즐기라고 주는 자리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