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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難讀日記 (난독일기)] 무(無)

 

‘고독’은 다분히 문학적이다. 문학적인 단어 뒤에 죽음을 붙인다고 해서 그 죽음이 아름다워지진 않는다. 고독은 고독이고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전혀 별개인 둘의 관계를 하나로 묶어 표현하는 것은 망자에 대한 결례다. 죽음을 부르는 것은 고립이지 고독이 아니다. 기억하자. ‘고립사(孤立死)’는 있어도 ‘고독사(孤獨死)’는 없다.

 

그의 주검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집주인이었다. 몇 달 째 월세가 밀리자 주인은 현관문을 따고 들어갔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그는 일자리마저 끊기자 베란다에 목을 매고 죽었다. 시신은 바싹 말라붙어 미라 상태가 되어있었다. 주인은 출동한 경찰에게 “처음 봤을 때는 마네킹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유서는 없었다.

 

그는 방바닥에 앉은 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피를 토한 비닐봉지와 포장이 뜯기지 않은 죽 한 그릇이 옆에 놓여있었다. 수저 대신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건 어린 남자아이의 사진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이십년 전 이혼한 아내를 따라간 아들의 사진으로 밝혀졌다. 아들의 사진은 그의 침대 머리맡에도 붙어있었다. 유서는 없었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그의 주검은 방 한 가운데 쓰러져 있었다. 번개탄으로 추정되는 연탄재가 자살을 입증하는 증거였다. 이웃들은 그가 10년 넘게 기러기 아빠로 지냈다고 했다. 정년퇴임한 대학교수란 말도 잊지 않았다. 기러기 아빠였던 그는, 자살을 위해 준비한 번개탄 비닐봉지를 분리수거하고 죽었다. 유서는 없었다.

 

연락을 받고 찾아온 가족들도 있긴 있었다. 결핵을 앓던 아버지가 죽자 아들과 며느리가 나타났다. 십년 동안 찾아오지 않던 자식들이었다. 둘은 “아버지가 끼고 있던 금반지가 안 보인다”며 각혈로 피범벅이 된 방바닥 곳곳에 이불을 펴놓고 밟고 다녔다. 실종된 금반지는 끝내 찾지 못했다. 유서는 없었다.

 

홀로 지내던 노인들이 황혼기에 새살림을 차렸다. 할아버지 자식들이 재산을 노린 만남이라며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자식들의 계속된 성화에 실의에 빠진 노부부는 결국 동반자살을 선택했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자식들은 할아버지가 남긴 통장을 찾느라 온 집을 들쑤셔놓기 바빴다. 유서는 안중에도 없었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고독이 아니라 고립이다. 고립은 단절의 옆모습이고 절망의 뒷모습이다. 고립의 실체를 고립시켜야 한다. 하루에 두 명의 이웃이 최소한의 존엄마저 상실한 체 세상으로부터 쫓겨나고 있다. 최근에는 시신을 인수할 연고자가 없거나, 있어도 시신의 인수를 거부하는 무연고사망자도 늘어나고 있다. 주검은 있는데 실체는 없는 꼴이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집계된 무연고사망자는 9330명이다. 2019년 상반기에 사망한 1362명을 합하면 1만692명에 달한다. 무연고사망자 유골은 십년 동안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보관하다가 연고자가 나서지 않으면 폐기 처리된다. 그리곤 끝이다. 사람이란 것도 별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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