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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세상은 검사나 판사가 아니라 스토리가 지배한다

③ 모츄어리 컬렉션 - 라이언 스핀델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가. 돈? 권력? 종교? 법? 뜻밖의 공포영화 ‘모츄어리 컬렉션’을 보면 그건 모두 아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스토리다. 이야기이다. 남들의 호기심을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는 이야기, 그래서 스스로를 바꾸고, 남들을 바꾸고, 결국은 세상까지 바꿀 수 있는 이야기. 스토리야말로 진정한 힘의 원천이다.

 

‘모츄어리 컬렉션’은 공포영화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오히려 다 저지르고 있는데도 이상하리만큼 점점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의 작품이다. 이 영화는 무섭지 않다. 그다지 무섭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도 무섭지가 않다. 다만 표현 수위가 나름 높다는 것뿐인데 그 정도는 공포보다는 쾌감의 수준이다. 공포영화가 가장 공포스러울 때는 무섭지 않을 때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그런 불문율도 이 영화에서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하나도 무섭지 않은 반면 매우 흥미로운 스토리로 진행된다. 그것이야말로 ‘모츄어리 컬렉션’의 특징이다.

 

이 영화의 골조는 기본적으로는 ‘아라비안 나이트’와 같은 것이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옴니버스 형식이다. 짧은 이야기가 잇따라 이어지며 그 얘기마다는 연결 고리가 없다. 아니 없는 척 한다.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이야기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면 전체 이야기는 마치 뫼비우스 띠와 같은 것이다. 처음은 끝에 연결돼 있고 휘어져 가는 이야기의 과정 끝은 또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근데 그건 지어낸 것들인가, 아니면 진짜 있었던 것들인가. 사실 그 문제는 중요하지가 않다. 그보다는 상대를 몰입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런데 그건 어찌 보면 영화라는 것 자체의 운명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얘기가 진짜인가 가짜인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그럴듯한 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얼마나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는 가이고 결국 그들로 하여금 홀딱 넘어가게 만들 수 있느냐이다. 그런데 ‘모츄어리 컬렉션’을 보고 있으면 특이하게도 영화가 지닌, 그같은 숙명 자체에 대한 약간의 시니컬한 기분도 느껴진다. ‘영화가 꼭 재밌기만 해야 하니?’라는 질문도 담겨져 있다. 할리우드 너희들, 그렇게 재미 재미 노래를 부르더니 남은 게 뭐였니, 하는 힐난의 표정이 느껴진다.

 

‘모츄어리 컬렉션’은 제목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영안실의 수집품’들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장의사가 채집해 놓은 이야기 보따리란 뜻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시체들은 모두 자기들만의 사연을 하나씩 다 갖고 있기 마련이고 그걸 아는 사람은 바로 장의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장의사 다크(클랜시 브라운)는 막 어린아이의 영결식 진행을 끝낸 참이다. 그의 추도사가 ‘투 머치(too much)’였던 탓에 사람들은 매우 불편한 기색으로 돌아간 직후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젊은 여성이 슬픈 표정으로 아이의 관을 열어보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샘(케이틀린 커스트)이고 알고 보니 직원 채용 표지판을 보고 들어온 여성이다.

 

이때부터 다크와 샘의 수다가 시작된다. 정확하게는 다크의 일방적인 얘기가 펼쳐진다. 그는 여자를 신규 직원으로 채용할 결심이며 그녀에게 장례식장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주구장창 늘어놓을 생각이다. 그래서 이런 얘기도 있었지, 저런 일화도 있었지 등등 1화, 2화, 3화를 지껄인다.

 

 

마지막 4화, 곧 대미는 샘이 직접 장식한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야말로 이 영화가 지닌 재미의 극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전의 묘미를 보여준다. 아하 그렇단 말이지. 그랬었단 말이지, 하게 된다. 무릎을 철썩 치게 만든다. (샘이 왜 처음에 관을 열어보려고 했는지 그 짧은 순간의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모든 장르 영화는 트릭을 하나씩 숨겨 놓고 있고 그걸 알아차리는 것은 사실 쏠쏠한 재미를 준다.)

 

1화에서 3화까지 전개되는 다크의 방담(放談)이 한 단계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되는 게 흥미롭다.

 

1화를 얘기해 주자 샘은, 아 그건 별론데요 한다. 2화에서 다크는 강도를 좀 높이고 3화에서는 아예 쭉 끌어 올린다. 사실 관객들도 1화의 얘기를 보면서는 자칫 심드렁해지기 십상이다. 이거 너무 뻔한 얘기 아냐? 어쩐지 스타급 배우는 한명도 볼 수 없는 B급 공포영화같더라니, 하는 심정이 된다. 인간의 탐욕이 큰 화를 부른다는, 교과서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화장실에는 늘 괴수가 숨어서 살고 있다는 ‘전설의 고향’식 스토리이기도 하다.

 

콘돔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주인공 남자의 비뚤어진 성적 쾌감의 욕망을 비꼬는 2화의 이야기는 이게 공포영화인지 코미디인지를 다소 헷갈리게 만들 정도다. 남자는 그 벌로 여자에게 ‘감염’이 됐고 그래서 임신을 하게 된다. 이 남자는 결국 애를 낳다가 배가 터져 사망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조금 미안하게도’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1980년대식 AIDS에 대한 편견과 그에 준하는 사회적 공포 의식이 어쩌면 유치하고 마초적인 남성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비롯됐고 어떤 의미에서 그 벌을 저렇게 처절하게 받았어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3화에서는 식물인간으로 살아가는 아내를 10년 간 간호해 온 남편이 결국 그녀를 살해하려다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엘리베이터에서 정신줄을 놓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에피소드는 결코 코믹하지 않은 바, 오랫동안 부부생활을 해 온 커플들에게는 역설의 공감(共感)을 불러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다. 누군들 ‘저런 생각’을 한 번이라도 안 해 본 부부란 없을 것이다. 다만 저걸 저렇게 대놓고 얘기하니, 이상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뿐이다. 이런 이야기를 통한 대리만족이 없는 한 현대사회에서는 부부의 비극이 속출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늘 그렇게 위선의 간극을 오가며 살아가는 존재다.

 

마지막으로 견습생 샘이 장의사 다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가 본체이다. 그 스토리에는 피 터지는 살육전이 전개되는데 사실 이야기가 뒤집혀져 있다. 진짜가 가짜이고 가짜가 진짜이다. 눈썰미가 강한 관객은 왜 베이비시터인 샘이 아이 부모의 전화를 앤서링 머신으로만 듣고 있는지가 의심스러울 것이다. 직접 통화를 하지 않고. 그 부분을 유의 깊게 되짚어봐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한꺼번에 훅 이해가 된다.

 

자, 모든 건 스토리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스토리로 엮어내는 콘텐츠이며 그것을 있게 하는 궁극의 상상력이다. 상상력이 사라진 사회는 죽은 시인의 사회다. 상상력을 고갈시키게 만드는 세상은 쓰러져 가는 고목(古木)의 사회다. 세상은 정경사(政經社)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건 닫힌 사회다. 발칙한 상상력의 이야기들로 세상을 자꾸 열어가야 한다. 한국사회는 지금 닫힌 사회인가, 열린 사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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