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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칼럼] 역사를 땅에 묻으려는 자들에게

 

미쓰비시 기금교수로 하버드 법대에 채용된 존 마크 램지어. 그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매춘부(prostitute)" 라고 칭한 논문(태평양 전쟁에서 성매매 계약 : 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의 파장이 일파만파다. 한국은 물론 미국 내에서도 격렬한 논쟁이 뒤따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박유하 교수가 나섰다. 램지어의 글을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정확한 건 말할 수 없지만... 이 교수의 주장이 역사적 디테일에선 크게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자기 페이스북에서 밝힌 것이다.

 

텍스트에 기초한 접근은 모든 객관의 기초다. 그럴진대 논문 자체를 안 읽었다면서도 해당 주장이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저 무모한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크레스웰(Creswell, 1998)의 지적대로 역사적 연구에서는 해석학적 입장, 즉 사료(史料)에 대한 연구자의 주관적 관점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앞서 확보되어야 할 것은 자료 수집과 분석에 있어 최소한의 실증적 근거다. 학문으로서 역사학이 개인의 소감을 나열하는 ‘에세이’와 구별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지난 2014년 박유하교수가 '제국의 위안부'란 책을 통해 점화시킨 논쟁의 핵심이 무엇인가? 일제하 종군위안부의 성격 규정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위안부 강제 동원에 일본군과 국가기관이 직접적으로 관여했는가? 아니면 그 같은 동원이 지원자의 자유의지에 기초한 자발성을 지니는가?”의 문제다. 램지어의 매춘부 운운 논문과 박유하 교수의 맞장구는 결국 후자의 해석을 강력히 지지하는 것이다.

 

나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하여 늘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들이 논거의 교두보로 삼는 일차적 자료는 ‘종군 위안부 실행 당사자로서 일본’에서 생산된 것에 틀림이 없으리라. 그 가운데 가장 결정적 객관성을 담보한 것은 당연히 국가를 대표하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일 것이고.

 

관건은 이 같은 "종군위안부의 성격" 에 대하여 이미 일본 정부에서 공식적, 공개적으로 이를 규정한 바 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인 1993년 8월 4일, 일본 관방장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고노 다로의 아버지다)가 무려 1년 8개월 동안의 공식 조사를 바탕으로 발표한 '고노 담화'가 그것이다. 이 담화를 통해 일본정부는 위안부 동원이 강제적으로 이뤄졌으며, 현장에서의 실제적 동원 담당이 누구였든 간에 해당 과정에서 관헌(官憲) 즉 국가기관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음을 세계 앞에 인정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일본정부 스스로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 책임을 자발적으로 인정하고 정부 예산 10억 엔을 한국에 지급했다. 이것이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정부와 아베정부 간의 그 문제 많은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불가역적 해결 합의’다. 당시 기시다 후미오 외상은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합니다.”라는 사죄의 뜻을 밝혔다. 집권당이 자민당이든 민주당이든 이것이 지금까지 일본정부의 일관된 공식 입장이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나는 램지어 교수, 박유하 교수 및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 일파가 의존하는 임의적, 편향적 자료들이 과연 일본정부 담화와 공식 사과에 담긴 역사적 증거를 무력화시킬 만큼 타당한 것인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성노예 상태였다는 압도적인 문헌 자료와 직접 증언 그리고 유엔과 국제 앰네스티 등 국제사회의 결정보다 무게를 지니는 것인가?

 

박유하 교수가 책과 글을 통해 시종일관 펼치는 지론은 한국과 일본이 앞날을 위해 사이좋게 지내자는 제안이다. 그 소박한 바람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우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전제가 있다. 참혹한 가해를 자행한 측의 진정한 반성과 재발 방지 노력이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는 일방적 화해 주장은 과거를 무조건 땅에 묻자는 얼치기 선동에 다름 아니다. 다가올 미래에 다시 일본의 국가범죄를 이끌어 들이는 초대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행위를 반역사적 작태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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