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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사랑하면 때릴 수 없어요

 

작년 5월 어느 날이었다. 다른 선생님과 복도를 걸으며 아이들이 없는 상황에서 학교라는 공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배움이 일어나야 할 곳에 배움의 주체가 없으니 특별한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대화가 길어지며 아이들이 학교에 안 올 때의 장점은 뭐가 있을지까지 이어졌다. 내가 다른 건 모르겠고 학교 폭력이 없어져서 좋다고 해맑게 말했다. 옆에서 걷던 선생님이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학교 폭력이 없어진 대신에 가정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에게 아동학대를 당하다 시설에서 보호 받게 된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A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동학대 신고로 시설 보호 기관에 갔었다. 어린 A에게 시설에서 지켜야 할 수많은 규칙들은 너무 엄격했고, 함께 지내는 아이들에게 적응하는 것도 어려웠다. 접견하며 만난 아빠는 다시 학대하지 않겠다고 다짐의 다짐을 했다. 결국 짧은 기간 시설에서 머무르다 다시 아빠와 살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아빠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하게 A를 학대했다. 학교에 다닐 땐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자 학대의 정도가 점점 올라갔다. 집안일을 해놓지 않았다고, 밥을 잘 안 먹었다고 때렸다. 어느 날에는 핸드폰 줄로 목을 졸랐다. 그 다음엔 칼 끝을 A의 등에 댔다.

 

아빠에게 폭력을 당하고 죽이겠다는 말까지 들었지만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어려웠다. 신고해봤자 다시 시설로 가게 될 거고, 그곳도 집만큼이나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학교에서 아동학대 예방 교육을 들어도 삶이 변하는 건 없었다. 불편한 시설이냐, 괴로운 폭력이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으니까. 어느 쪽으로도 쉽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끝이 없어 보이던 A의 인내심은 칼 끝이 등에 닿는 순간 끝났다. 차마 선생님께는 말하지 못하고 옆반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다. 다행히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곧바로 학교에 알렸고 교사가 학대 신고를 하면서 폭력이 멈췄다. 다행히 A는 새로운 시설에서 잘 적응하다가 위탁 가정으로 가게 되었다. A가 용기내어 폭력을 알리지 않았으면 무슨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하기 괴롭다.

 

때리는 사람에게 체벌의 목적을 물으면 '교육적 효과'를 말한다. 맞은 사람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어릴 때 경험한 체벌로 건강한 어른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참 엇나갈 시기에 적절하게 맞고 자란 덕분에 바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체벌이 없었어도 훌륭하게 자랐을 사람들이다. 수많은 연구와 논문들에서 체벌의 긍정적 효과는 전혀 없고 부정적 효과만 있음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잘못을 저지르면 뒤에 일어나는 일은 거의 공식화 되어있다. 사건이 발생하면 부모님 손에 사랑의 매가 등장한다. 몇 대 맞은 뒤에 잘못을 반성한다고 말하면 끝이 난다. 부모들이 생각하는 체벌의 핵심은 잘못하면 처벌받는다는 규칙을 몸에 새기는 거다. 거기에 나름의 교육적 효과를 달성해야 하니까 아이에게 잘못을 말하고 반성하게 시킨다. 앵무새처럼 반성한 내용을 말하는게 행동 개선에 도움이 될까.

 

사람의 행동 변화는 폭력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온다. 적절한 수준이라고 믿는 체벌도 아이들에게 감동 감화를 일으키지 못한다. 그 순간의 폭력을 견디면서 상처 받을 뿐이다. 아이들에게 맞았던 상황에서 느꼈던 감정을 서술해보라고 하면 수십 가지의 부정적 형용사가 등장한다. 슬픔, 무서움, 우울함, 아픈. 이 중에서 잘못을 반성한다거나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형용사는 찾아볼 수 없다.

 

부모님이 때리면 아이는 입으로 잘못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반성하는 건 아니다. 폭력을 당하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음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나 이만큼 심하게 맞았다는 이야기거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이의 입장에서 체벌은 사랑이나 교육이 아니라 그저 분풀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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