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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의 아르케] 찢겨진 산하

 

백기완과 정경모. 두 분이 하루 사이에 연이어 별세함으로 인해 정경모 선생은 그다지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정경모는 요즘 말로 하면 작가다.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다 일본에 망명한 정경모의 본격적인 저술 활동은 광주항쟁으로 촉발되었다. 광주의 원혼들의 슬픔을 노래해주기 위해 1981년 ‘シアレヒム(씨알의 힘)’이라는 잡지를 발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잡지의 제6호(1983년 6월)에 여운형 · 김구 · 장준하의 구름 위 정담(三先覺雲上經綸問答)을 게재했고, 그것을 1984년 단행본으로 내놓은 게 ‘찢겨진 산하’다. 그 내용은 세 분 선각자의 말이기도 하고 작가 정경모의 생각이기도 하다.

 

주제의식은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이 별개가 아니기 때문에 상호관련 속에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화운동을 한다면서 통일운동을 경원시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민주화운동을 촉발시킨 근원이 분단에 있기 때문에 둘을 분리시킨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은 동학농민혁명 사상에서 연유한다는 사실을 결론적으로 강조하면서 글을 마친다.

 

‘찢겨진 산하’는 정경모의 창작이지만 철저히 검증된 자료를 근거로 쓴 역사책이다. 해방 후 친일청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친일파들이 대한민국의 주류가 된 이후 기록된 역사는 왜곡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일제 강점기 친일의 역사를 은폐 미화해놓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왜곡된 현대사에 대한 교정 작업이다. 이승만을 비롯해 김성수, 모윤숙, 신익희, 윤보선, 조병옥, 장 면, 홍명희 등 현대사 인물들에 대한 촌평도 읽을 만하다.

 

하나의 사례만 소개하기로 한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지금까지 잘못된 방향으로 굴절시킨 대표적인 사건이 신탁통치 반대운동이다. 소위 반탁운동으로 인해 친일파들이 우파 애국자로 둔갑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좌파 매국노로 오인하게 만든 대형사고였다. 심지어 김 구도 반탁운동의 대열에 앞장서기도 했다.

 

모스크바 3상회의의 합의를 왜곡함으로써 촉발된 반탁운동은 통일된 자주독립국가로의 길을 막고 분단으로 치닫게 함으로써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버렸다. 친일지주들의 결사체인 한민당의 기관지 동아일보가 왜곡보도로 큰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다. 한 대목 옮겨본다.

 

여운형 그때도 사실은 ‘항의’를 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선생님께서 이승만과 손을 잡으시고 추진하고 계신 반탁운동이 민족의 미래에 큰 화근이 될 것이며, 소박한 김치론으로는 사태에 대처해나갈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주십사 하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선생님께서는 제가 드리는 말씀에 귀를 기울일 뜻이 전혀 없으셨지요.

 

김 구 (침묵)

 

정경모는 1989년 3월 문익환 목사와 함께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일로 인해 돌아가실 때까지 그리던 조국을 한 번도 찾지 못했다.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작가 정경모에 문익환 목사까지 해서 다섯 분이 약사봉 꼭대기 구름 위에 모여 나눌 정담(雲上鼎談)을 상상해본다. 유시민 작가가 써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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