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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수의 월드뮤직기행] 혁명과 노래 4편 백학, ‘세계대전의 비목’

 

택시 안에서 오랜만에 가곡 ‘비목’을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처연한 가락, 시 같은 노랫말에 끌려 즐겼던(?) 노래인데 지어진 사연을 알고 쉽게 부를 수 없는 노래가 됐다.

 

1960년대, DMZ 주변을 수색하던 육군 소위가 무덤 하나를 발견한다. 돌무덤 앞, 나뭇가지로 세운 비(碑) 위에 녹슨 철모가 걸려있었다. 6.25 전쟁의 포화 속에 스러진 한 청춘이 첩첩산골 잡초 속, 이름도 없이 비목으로 남은 것을 보고 가슴 아팠던 소위. 훗날 방송국 음악 PD로 재직 중 그때의 심정을 떠올려 노랫말을 만든다. 비목 작사가 한명희(82) 전 국립국악원장 이야기다.

 

전쟁과 무명용사 애사(哀史)가 우리나라에만 있었겠는가.

비목을 떠올리게 하는 월드뮤직이 몇 곡 있는데 ‘백학’(Cranes)이 대표적이다.

 

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 하는 육성 섞인 전주를 들으면 중년 이상 세대 상당수 사람들은 이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백학을 주제곡으로 썼던 이십여년 전 드라마 ‘모래시계’를 떠올릴 것이다. 70년대, 80년대를 소환해 5.18광주, 삼청교육대, YH사건 등 엄혹했던 시대를 다룬 드라마의 장중함과 비극성을 살리는데 배경음악이 한몫 했다.

 

그런데 노래 부른 이오시프 코브존(Iosif Kobzon 1937- 2018)이 러시아 가수여서 그런지 러시아 민요라고 언론에 나왔다. 이를 정정한답시고 나온 기사들도 오보가 적지 않았다. ‘인종문제로 갈등 빚어온 체젠 국민들의 한 서린 민족음악이다’ 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실제 작사자는 러시아 남부 다게스탄 자치 공화국 출신의 시인 라술 감자토프(Rasul Gamzatov,1923-2003)다. 시인은 세계 2차대전 중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전했다. 소련군과 나치 독일군간 벌어진 전투로 양측 사상자가 200만명이나 나온 2차 대전 최대의 유혈 전투였다. 인육까지 먹으며 버티던 참혹한 격전 끝에 결국 동토의 시체로 뒹구는 전우들을 본 라술 감자토프의 심장에서 한 편의 시가 솟는다. 이 시는 60년대 영화 ‘스탈린그라드’의 배경음악 노랫말로 재탄생해 러시아의 국민가요로 불린다.

 

나는 가끔 병사들을 생각하네/ 피로 물든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이/모국 땅에 묻히지 못하고/ 백학이 된 듯하여/ 그들은 예로부터 하늘을 날며/ 우리를 부르는 듯 하네...(중략)....날아가네 저무는 하루의 안개 속을/ 무리 지은 대오의 작은 틈새/ 그 자리가 나의 자리는 아닐까/ 그날이 오면 학들과 함께/ 푸른 아지랑이 속을 끝없이 날아가리/ 대지에 남겨둔 그대들의 이름자를/ 천상 아래 새처럼 목놓아 부르면서

 

반만년 고난의 역사를 돌아보면 전쟁 없고 굶주림 없는 지금 이 시대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남북분단의 현실이 있어 태평성대라 할 수는 없다. 나라밖 지구촌 곳곳에는 분쟁과 압제로 인한 민중의 수난이 여전하다. 세계 대전에서 시로 비목을 세운 추모곡 백학이 먼 과거, 먼 나라의 노래일 수 없는 이유다.

 

백학은 이오시프 코브존의 목소리도 좋지만 그리스 여가수 해리스 알렉시우(Haris Alexiou)가제 나라말로 부르는 노래도 추천한다.

 

(인터넷창에서 www.월드뮤직.com을 치면 소개된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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