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하원이 건국이념 조항인 헌법 1조에 "공화국은 생물다양성과 환경보전을 보장하고, 기후변화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인류사회 전체가 직면한 시대적 요청을 명문화할 것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다. 상원을 통과하면,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투표로 확정하게 된다. 역시 프랑스답다. 이는 "프랑스는 '슬로우 푸드(slow food), 슬로우 라이프( slow life)'를 구가하는 나라가 되겠다", 는 천명이다. 실로 감동적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 대혁명(1789~1799)의 기치와 가치가 이 품격 선언의 뿌리다.
역사적 사건들은 우연 같지만 예외 없이 필연이다. 과거는 현재의, 오늘은 내일의 원인이다.1986년 이탈리아에서 시작했지만, 3년 후 '슬로우 푸드(slow food) 선언'이 파리에서 채택된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를 비롯, 전세계 180개국에서 10만명 넘게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그 선언문의 일부다.
"산업혁명으로 최초로 기계가 발명되었다. 기계는 오늘날 우리 생활의 모델이 되었다.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되었다. 기계는 우리의 소중한 관습을 망가뜨린다. 사생활을 침해하고 식사시간을 줄여서 일하도록 '패스트 푸드'(fast food)를 먹게 한다. 우리는 '패스트 라이프'(fast life)라는 음흉한 바이러스에 굴복되어 가고 있다."
속 깊은 시민들 소수가 전통적인 음식문화를 해치는 패스트 푸드 기업의 진출을 반대했다. 그게 이 운동의 시작이었다. 패스트 푸드는 노예들의 식사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미래에도 음식은 우리 생명을 유지하는 핵심가치다. 장사치들이 그 가치를 부정하는 싸구려 자극으로 만인의 미각을 획일화시킨다. 그 끝은 불보듯 뻔하다. 인류사회는 이미 집단적 영양부실 상태다.
'슬로우 푸드'는 '패스트 푸드'의 상업주의가 내포한 저급성과 악마성을 부정하며 취하는 선택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요람에서 무덤까지, 먹거리와 음식문화만큼 우월적인 요소가 어디 있는가.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는 효율과 속도의 세상을 거부하자. 저비용의 올바른 식생활은 신토불이(身土不二) 장마당의 무농약 로칼 푸드다. 그 노선 위에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일상과 생태 혁명의 저력이 함께 한다. 음식은 일부가 아니다. 전부다. 이에 생사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패스트 푸드는 자신과 가족과 후손을 병들게 한다. 과식은 착취고 폭력이다. 불의하다. 정치경제도, 외교도 품위있는 식생활처럼 하면 당연하게 품격이 따른다.
예상컨데, 웹스터 영어사전은 조만간 '슬로우 푸드(slow food), 슬로우 라이프( slow life)'에 품위, 자존감, 구원 등의 뜻을 부여할 것이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세상의 모든 분야에 온통 다 연관되는 철학용어로 격상시킬 것이다.
나는 슬로우 푸드 협회 www.slowfood.or.kr의 회원이며 녹색당의 당원이다. 가입하면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