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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대장부

 

내가 외운 최초의 한시(漢詩)는 '대장부가'(大丈夫歌)다. 복학하여 '맹자 원전강독'을 들었는데 이 시가 너무 좋았다. 중국에는 수교 초부터 드나들었다. 현지 파트너들과 만찬을 할 때면 매번 통역사인 친구가 여급에게 백지와 펜을 부탁한다. 취기가 오른 나는 과장된 폼을 잡고 이 위대한 시를 내려 쓰곤 했다. 그러면 모두 놀란다. 한번은 그 덕분에 큰 계약을 쉽게 한 적도 있다. 중국측 대표가 맹씨였다. 그에게 이 시를 써주었다. '非常棒(비상봉)!'은 그의 칭찬. '엄청난 인물'이란다.

 

大丈夫歌(대장부가) 대장부의 노래

 

居天下之廣居(거천하지광거)  거하되 천하에서 가장 넓게 자리 잡으라
立天下之正位(입천하지정위)  서되 천하에서 가장 올바른 자세를 취하라
行天下之大道(행천하지대도)  행하되 천하에서 가장 거침 없이 나아가라
得志 與民由之(득지여민유지)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함께 하고
不得之(부득지) 獨行其道(독행기도)  뜻을 얻지 못하면 혼자서 그 도를 닦아라
富貴不能淫(부귀불능음)  부귀는 그를 삿되게 하지 못한다
貧賤不能移(빈천불능이)  빈천도 그를 시시하게 만들지 못한다
威武不能屈(위무불능굴)  위력 권세도 그를 결코 굴복시키지 못한다
此之謂大丈夫(차지위대장부)  그가 바로 대장부다

 

 

호연지기(浩然之氣)의 아버지 맹자가 갈파한 이 '절창'을 오랜만에 음미한다. 2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도토리들이 나라를 구하겠다면서 준동한다. 중추세력인 정치와 관료조직은 물론, 언론 등 감시기관들까지 궤도이탈, 타락 또는 무능이 극도로 심화되었다. 그들은 본분을 망각하고 공공성을 유린한다. 심지어 조롱한다. 자기모멸이다. 추호의 부끄럼도 없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당신은 이에 모욕감을 느끼는가. 분노를 참을 수 없는가. 물론 양질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소수의 저질과 악질들이 전체를 지탄의 대상으로 만든다. 공동체는 큰 상처를 입고, 약자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다.

 

공교육은 사교육 시장에 지식의 전수를 위임한 채, 교사들 고용유지를 위한 예산수립과 집행기관일 뿐이라는 참담한 증언들이 있다. 그 이상의 가치들을 추구하는가. 솔직히 믿음이 없다. 금년 교육예산(76조5천억원)은 국방예산(52조원) 보다 많다. 학교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상위 1-2%의 소수를 위하여 또래들 전원을 들러리 세운다. 이게 나라냐.

 

우리나라를 고품격으로 이끌어갈 대장부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머지않아 잔학하고 탐욕적인 소인배들이 끔찍한 난동과 약탈을 일상화하여 나와 친구들, 우리 자식들을 지옥의 주민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실은 이미 깊이 진행되었다. 이를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역사 속에는 창공의 성좌와 같은 영웅호걸들이 부지기수다. 그들은 예외없이 존경과 자부심의 대상이다. 현대사회는 기계처럼 순종적인 노예를 선호한다. '빅 브라더'와 맞짱떠서 거칠게 물리칠 대장부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