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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돈

 

약 40년 전 어느 날 사회면 톱기사다. 6·25 때 월남하여 성공한 한 노인이 강도에게 살해되었다. 그는 열심히 일하여, 돈 참 많이 벌었다. 그의 여러 빌딩들 가운데 가장 허름한 게 장충동에 있었다. 노인은 그 건물의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 삼각진 작은 공간에서 일을 봤다. 낡은 전기장판, 전화, 오래된 치부책들 몇 권, 볼펜 두어 자루, 목침 하나가 용품의 전부였다. 점심은 항상 혼자서였고 언제나 값싼 짜장면이었다. 노인은 이렇게 살아서 부자가 되었고, 그 노하우는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화려하고 당당한 부자들의 가슴 속에 이 노인의 영혼이 들어 있지 않을까.

어느 날 저녁, 스무살 쯤 된 청년이 침입하여 주판을 놓고 있던 노인을 놀라게 했다. 


“돈 내놔.” 
“뭐 이 도둑놈의 새끼야.” 


노소(老少)가 실랑이 하던 중, 허리춤을 잡힌 청년이 위협용으로 품고 간 칼로 노인을 찔렀다. 부노(富老)의 삶은 그 시간 거기서 멈췄다. 어설픈 청년 강도의 삶 역시 사실상 끝났다. 

나는 당시 20대 신문방송학과 복학생이었는데, 그 시절 수첩에 아쉬운 미담들이 적혀있다.


지갑을 털어 주면서, “앞날이 창창한 놈이 왜 이렇게 사냐? 이거 가져가 쓰고, 다음에 또 와라”고 친절하게 보냈더라면...
신상을 자세히 묻고 무직이면 소유 건물 중 한 곳에 청소일이라도 맡겼더라면...
공부하라고 격려하여, 낮에는 일 시키고, 밤엔 야간학교라도 다니게 했더라면...
어머니 병이 위중하다는 걸 알고서 봉투를 쥐어주고, "빨리 내려가 이 눔아!",  호통 치며 등을 떠밀었더라면...
헤진 신발과 철 지난 옷을 보고, 목욕비 몇 천원에, 옷과 운동화 한 켤레를 사 신겨 보냈다면.... 

 

노인은 지금 백수를 누리며, 청년이 들고 왔던 칼로 마분지를 썰어 메모지를 만들고 있지 않을까. 청년은 잘 자라서, 판검사나 의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느날, 방송국 피디를 만나서 인터뷰하는 장면도 상상이 된다. 그 자리에서, 그 친구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은인, '장충동 그 노인'에 관하여 술회하면서, 눈물을 펑펑 쏟는 모습을 떠올리는 건 뭉클하다.

 

어지간한 내공의 소유자가 아니면, 사람이 돈에게 패한다. 두 전직 대통령이 돈에 굴복한 죄로 감옥에 있는 나라다. 그걸 보면서도 정치인들 다수가 추하게 돈을 쫒아다닌다. 돈 사람들이다. 재벌회장들도 나쁜 방법으로 돈 버는 짓을 멈추어야 유리하다. 죽으면  빈 손으로 돌아가는 걸 알면서도 왜 그리 다들 쩨쩨하고 시시한지. 공직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밥통 국록을 고마워하며 살라. 걸리면 합법 타령하지만, 부끄럽잖나. 언론인들,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다수는 돈을 갈애(渴愛)한다. 저품위다. 문제는 대부분 이렇게 모욕적인 충고에 분노도, 부끄럼도 없다는 것. 몹시 저열하다. 씨알들만 힘들게 살면서도 알아서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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