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은 과학이다” 그렇다. 칼럼을 쓰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백신 접종 후 사망사례’가 백신의 부작용으로 사망에 이른 것인지, 사망한 사람이 사망 전 백신을 접종한 상황인지 구분하지 않고 단순 사실을 중계한 언론이 문제라고 바라봤다. 선거를 의식해서 정치의 이슈로 백신과 방역을 논하는 것이냐고 의심을 가졌다. 정치가 끼어들면 불안은 불신과 불만으로 부정적 감정을 키우고 이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다시 정치의 힘을 빌리게 만들려는 계산이 아니겠냐 싶었다.
백신과 방역은 의학과 과학의 전문성을 요구한다. 백신 접종이 기대한 대로 빠르고 대량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이었다면 “(방역을) 정치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것이냐?” 같은 질문을 논할 가치도 없었다.
초기 방역에 실패했던 이탈리아와 미국 등은 초기 방역에 실패했다. 이탈리아는 하루 신규 확진자 4만 여명을 넘겼었고, 미국은 지난 1월초 30만 여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작년 연말 하루 1237명의 확진자수가 최대였다. 나라마다 방역 상황이 다르다.
한국의 초기 방역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이제 감염병 유행을 통제하는 상태인 ‘집단면역’ 단계를 내다봐야 한다. 감염 후 생성되는 항체 양성률이 낮은 한국은 백신 접종률이 중요하다. 코로나 확산 초기에 방역을 성공했던 나라들이 공통으로 겪는 역설의 상황이다. 백신 접종률을 높이려면 접종 속도를 늘려야 한다.
방역이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백신 접종의 필요성과 효과를 공중보건 차원에서 제대로 알리는 차원에서다. 백신은 접종자뿐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 보호한다. 물론 백신만으로 감염병을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이 방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는 평가는 마스크나 손씻기 같은 개인 위생을 철저하게 지켜온 국민 개개인의 노력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11월 집단면역 계획이 성급했다는 지적처럼 계획은 변경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볼 부분이다. 갑갑하고 경제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인 만큼 낙관적인 전망을 필요로 한다. 백신 수급이 제때 이루어질지,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세가 얼마나 심할지, 백신을 맞고도 면역력이 얼마나 유지될지 상황은 불확실하다. 이럴 때일수록 정면돌파가 필요하다.
방역은 과학이지만 정치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불안한 마음을 이해하면서 설득해 가야 한다. 때로는 이런 과정에 정부 방역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고 심지어는 개인 방역을 손놓게 만들 가능성도 높다.
방역은 과학에 기반을 두어야 하지만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개인 방역을 이끄는 건 정치의 영역이다. 백신을 둘러싼 혼선과 불안은 과학으로 다독일 수 없다. 정치는 정치의 싸움이 아니라 느슨해지는 사회 방역과 싸워야 한다. 방역은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