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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의 아르케] 하이브리드 문화와 신문의 미래

 

미디어 환경의 변화니 커뮤니케이션 혁명이니 하는 말들이 무성했던 세월이 족히 반세기는 된 것 같다. 근래에는 미디어 환경 대신에 생태계 변화라는 말로 바뀌었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 그 변화가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어서 그런지 요즘은 이런 호들갑이 뜸해지고 연구자와 언론사, 기자들 모두 각자도생 하느라 바쁘다. 연구자는 본질을 놓치고 현상을 좇느라 여념이 없고, 언론사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듯 절실하고, 기자들은 ‘단독’을 만들어내느라 분주하다. 일컬어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라고 하던가.

 

후기 자본주의, 탈 산업사회, 포스트모더니즘 등 포스트주의가 유행하던 때도 있었다. 일리도 있고, 정보사회론의 대두와 미시담론의 발견 등 공(功)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주의를 앞세우며 진실을 부정한다는 데 있다. 진실은 상대적이며, 절대적 진실은 없다는 것. 탈진실의 시대를 설명하는 구호다. 그 결과 대학은 진리 탐구의 전당에서 취업학원으로 전락했고, 언론(저널리즘)은 객관보도의 원칙을 폐기하고 상업적 선정주의에 빠졌다. 그리고 기자는 기레기가 되었다.

 

오래 전부터 대학의 언론관련 학과에서는 저널리즘의 역사와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따라서 미디어의 역사와 철학을 전공하는 학자도 없다. 인문학은 폐허가 된지 오래다. 그 결과 저널리즘의 최고 가치인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해 역사성과 철학의 측면에서 미래의 저널리스트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합의된 개념을 정의해주지 못하니, 각자의 주장과 해석만 난무하다.

 

언론단체들은 매년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하고 기념한다.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조선 최초의 민간신문이라고 하여 독립신문 창간일인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하고 1957년부터 기념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때 회장이 이관구로 언론계 대표적인 골수 친일파였다.

 

독립신문은 조선 최초의 민간신문이 아니다. 독립신문은 정부가 출자하고 관리들이 신문을 제작했으며, 귀화 미국인 서재필에게 편집과 운영을 맡긴 공영신문이었다. 게다가 역사의식도 엉망이어서 스페인과의 전쟁을 신호탄으로 하여 제국주의 진출을 도모하고 조선에서도 이권을 취하던 미국을 본받아야 할 모델로 삼아 조선 백성들을 계몽하려고 했다.

 

오늘날 신문업계의 현실은 공룡이 멸종하고 포유류의 시대를 열었던 만큼이나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포유류가 활개를 치고 다양한 종의 분화가 이루어진 과정에서 인류가 출현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류의 출현이 지구 생태계에는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최고의 지능으로써 자연과 우주의 법칙을 알아낼 만큼 발전했다. 문화의 창조자인 인간의 두뇌는 급기야 미디어 융합에 따른 하이브리드 문화를 고안해냈다.

 

신문의 날을 기념하기에는 초라하게 변모한 신문의 운명은 태풍 속의 호롱불과도 같다. 조선일보가 보도하면 여론이 된다던 그 신문도 운명을 거슬리지 못한다. 진보의 희망이었던 한겨레신문은 스스로 붕괴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때에 경기신문의 예기치 않은 변신과 활약은 돌연변이와도 같다. 돌연변이는 새로운 종의 출현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은 ‘미디어가 메시지다.’ 라고 했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메시지가 아니라 미디어라는 통찰이다. 지금 상황이 그 과학적 증거다. 기존의 미디어 이론은 메시지의 효과에 집중하는데 매클루언은 다르다. 그의 통찰을 이해하려면 물리학과 생물학, 신경과학 등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그의 대표 저서인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은 자연과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저술되었다. 인간의 확장은 동물행동학과 신경과학, 지구촌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다.

 

제4차 산업혁명을 처음 거론한 슈밥(Klaus Schwab)은 디지털과 생물학, 수학을 강조했다. 제3차 산업혁명은 1970년대 미국의 정보산업육성정책에 따른 PC의 대중화와 인터넷의 결합으로 도래한 정보사회와 유전공학의 육성에 따른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진행을 특징으로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산업과 생명공학의 융합이 가져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 융합은 그 소산으로서 전통적 미디어의 몰락을 가져왔다.

 

브로노프스키(Jacob Bronowski)는 그가 진두지휘한 BBC 다큐멘터리의 기록인 『인간 등정의 발자취(The Ascent of Man)』에서 지난 20년 동안에 과학의 성격이 물리학에서 생명과학으로 관심의 초점이 옮아감으로써 “그 결과 과학은 점점 더 개체성의 연구 쪽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 라고 썼다. 실제로 그 후 유전공학을 비롯해 진화심리학과 뇌 과학 등 생명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 결과가 오늘날 IT산업과 융합된 하이브리드 문화의 등장인 것이다.

 

공룡처럼 종이 멸종하는데 독불장군으로 살아남을 수는 없다. 공룡은 멸종되었어도 자연선택에 의해 시조새라고 하는 새로운 종이 출현해 새들의 시조가 되었다. 경기신문을 비롯한 전통적인 의미의 미디어도 작금의 미디어 환경에 잘 적응하면 새로운 종으로 진화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단,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위기일수록 진실보도의 원칙을 지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저널리즘 분야에서 자연선택의 기준은 진실이다. 탈진실의 시대라는 레토릭에 취해 진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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