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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칼럼] 류시화를 다시 봤다

 

 

류시화. 그를 생각하면 ‘인도’가 떠오른다. 써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라는 건 진즉 알았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이 사람을 90년대 이후 불어온 인도 열풍에 편승한 상업주의 작가라고 의심해왔다. 그가 쓴, 이름이 생각 안 나는 인도 여행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대중영합적인 책이구나"라는 심증이 더 강해졌다.

 

며칠 전 딸아이 보라고 도서관에서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을 대신 빌렸다. 반납하기 전에 소파 위에 놓인 책을 심심풀이로 들쳐봤다. 의외로 흡인력이 강했다. 술술 읽혀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말 그대로 마음이 '덜컥' 흔들리는 듯 충격을 받았다. 47페이지 '세 가지 만트라' 대목이었다. 왜 그랬을까.

 

류시화가 명상 수행을 위해 북인도 히말라야 산록을 찾았을 때 이야기다. 산모퉁이 납작바위 위에서 명상에 빠진 요기(요가수행자) 싯다 바바를 우연히 발견한다. 그 순간 작가는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완벽한' 스승임을 직감하고 반 어거지로 제자가 된다.

 

문제는 이 스승이 제대로 된 명상은 하나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다. 물 길어오기, 밭 갈기, 땔감용 소똥 주워오기 등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온종일 일만 시키는 것이다. 그토록 평화로워 보이던 요기가 그를 제자로 삼은 이후부터 광인처럼 돌변했다. 더 이상 명상도 하지 않고 온 산을 뛰어다니기만 하는 게다.

 

결정적인 사건은 함께 지내던 동굴에서 쫓아낸 후 바깥에 돌덩이로 움막을 짓고 거기서 자라는 명령. 그래야만 작가에게 세 가지 만트라(眞言. 인생의 화두로 삼을만한 말)를 전수하겠다는 거다. 류시화를 격분시킨 것은 콧등이 벗겨질 만큼 뜨거운 태양 볕 아래 움막을 지어놓으면, 싯다 바바가 온갖 위계를 써서 계속 그걸 무너뜨려버리는 것이었다.

 

참다못한 작가는 탈출을 결심한다. 그리고는 복수심에 불타올라 스승의 유이(唯二)한 재산인 물항아리(나머지 하나는 털담요)를 산산조각 박살 낸 후 버스정류장으로 달아난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누더기를 걸친 싯다 바바 하리 옴 니티야난다가 류시화를 찾아낸다. 지은 죄가 있으니 잔뜩 움츠려 든 그에게 스승은 이렇게 말한다.

 

"그대에게 세 가지 만트라를 전수시켜주기 위해 왔다."

 

그리고 들려준 화두는 이랬다. 첫째, 너 자신에게 정직하라. 둘째,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찾아오면, 그것들 또한 머지않아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라. 셋째, 누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거든 신이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나서서 도우라.

 

말을 마친 스승은 류시화의 정수리에 손을 얹고 "옴-"하고 진동을 보낸다. 척추 끝에서 온몸을 마비시킬 것만 같은 강한 진동이 일면서 몸 전체로 퍼진다. 축복과 환희의 물결이 밀려오면서 왈칵 눈물이 솟아난다....

 

여기까지 읽다가 나는 책에서 눈을 뗐다. 싯다 바바가 보낸 진동이 덩달아 내 영혼을 흔든 것일까. 이상한 느낌의 아픈 충격이 왔다. 갑자기 머리가 멍해져 버린 것이다. 세 가지 만트라의 내용이야 서푼짜리 금언집에서도 등장할 법한 내용이다. 이 범상한 화두에 내가 왜 그렇게 임팩트를 받은 걸까. 모르겠다. 류시화가 어떤 깊은 뜻으로 이 에피소드를 소개했는지. 그가 여전히 '인도'를 우려먹는 아마추어 요가수행자인지, 아니면 내가 완전히 그를 오해했는지.

 

하지만 오래전에 작가 류시화가 히말라야 산록의 반 미친 듯한 요가 스승에게서 받은 만트라는 지금도 확실히 내 가슴속에 울리고 있다. 커다랗고 맑은 범종의 소리처럼. 그 여운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영혼을 저며내던 슬픔도 하늘을 뛰어오르던 기쁨도 방 안을 떠도는 향 연기처럼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니. 한갓 피조물인 너의 인생 또한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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