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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공간 혁신 프로젝트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다. 운동장 기억의 대부분은 교장 선생님이 구령대 위에 서서 훈화 말씀하시던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 말의 구체적인 내용이 떠오르는 건 아니다. 훈화 말씀 시간은 곧 흙장난을 치는 시간이었다. 한참 서 있으면 곧 지루해져서 발끝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친구에게 흙을 튀겼다. 바닥에 앉을 수 있는 운수 좋은 날에는 손으로 흙을 모아 쌓거나 지나가던 벌레를 장난감 삼아 놀았던 것만 생생하다. 한참 시간이 흐른 거 같아 고개를 들어 구령대를 쳐다보면 아직도 누군가가 일장연설 중이었다.

 

구령대는 늘 선생님들 것이었다. 운동회 때 유일하게 그늘이 생기는 구령대 아래에는 대회 본부석이 차려졌다. 우리는 옆쪽에 위치한 스탠드에 자리를 잡았다. 운동회를 시작하는 타이밍엔 스탠드에도 그늘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해가 움직이면 여지없이 직사광선이 내리 꽂혔다. 그때는 학생들이 햇빛을 받는 게 너무 당연해서 한껏 찌푸린 채 손 그늘과 손부채를 만드는 게 전부였다.

 

요즘은 분위기가 반전됐다. 운동회 때 학생들을 위해 각 스탠드마다 천막을 쳐서 햇빛 가리개를 만들어 주는 건 기본이고, 교사들의 전유물이었던 구령대까지 학생들에게 돌려주는 공간혁신 프로젝트가 한참 진행 중이다.

 

구령대 바꾸는 사업을 진행하기 전에 교사들이 먼저 다른 학교에서 어떻게 리모델링했는지 연수를 받았다. 다 똑같이 생겨서 눈 감고도 그릴 수 있던 구령대가 다채롭게 변신해 있었다. 어떤 학교는 구령대를 공원에 설치되어 있을 법한 노천 극장으로 바꾸었다. 계단식 벤치와 파라솔을 만들어 학생들이 아무 때나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공연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느 때나 이루어질 수 있게 했다.

 

또 다른 학교들은 구령대를 또 다른 놀이 공간으로 만들었다. 체육 창고로 방치되어 있던 구령대 1층 창고와 평상시에는 빈 공간이던 2층을 놀이터처럼 여러 가지 놀이 시설을 설치한 학교도 있었고, 1층엔 미니 도서관과 놀이시설, 2층엔 문화 공간을 만든 곳도 있었다. 무엇을 상상하든 기존의 구령대와는 많이 달랐다. 최근에 지어진 어린이 전용 시설에 가면 있음 직한 시설물이었다. 초등학교도 어린이 전용 시설인데 몇십 년 전에 지어져서 그런지 아직 어린이 중심 시설이 되려면 갈 길이 한참 남았다.

 

반 아이들에게 다른 학교에서 구령대를 변신시킨 사진을 보여주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처음 사진을 봤을 때는 자신들이 졸업한 후에 새 구령대가 생기는 거 아니냐고 약간 시큰둥해하다가 2학기 때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다들 열정이 생겼다. 우리 학교 구령대도 저렇게 놀이시설이나 문화시설로 바뀌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득 차오를 때 구령대를 어떻게 탈바꿈시킬지 구상하고 꾸며보는 수업을 했다. 사실 이 활동은 구령대 리모델링에 아이들만큼이나 진심이신 교장 선생님이 진행하셨다.

 

구령대 축소 사이즈 모형에 이것저것 설치하는 아이들은 둘러보니 대체로 의자와 테이블이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학교 건물 바깥 공간에 벤치나 소파 같은 의자를 찾기 어려워서 그런 것 같았다. 성인인 나도 공원에 가면 자연스럽게 벤치를 찾는데 아이들도 똑같았다. 에어컨과 보일러를 둔 친구도 있었다. 아이들만의 사랑방을 꿈꾸는 듯했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개학할 때 즈음이면 구령대가 바뀌어 있을 거다. 2학기 첫 수업은 바뀐 구령대에서 하고 싶은데 코로나가 도와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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