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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칼럼] 윤석열이 ‘사피엔스의 미래'를 읽었다면

 

인류의 미래가 희망적인지 비관적인지를 놓고 벌인 석학들의 토론(이 무슨 쓰잘 데 없는 짓인가,라고 처음엔 생각하기 쉽다.)을 보면서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됐다. 이 토론은 ‘사피엔스의 미래(전병근 譯, 모던아카이브刊)’라는 책으로 엮여서 시중에 나왔다.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은 스티븐 핑커, 매트 리들리, 알랭 드 보통, 그리고 말콤 글래드웰이다. 이들은 캐나다의 유명 토크 쇼인 ‘멍크 디베이트’에 참가했다. 이 토론회에는 3000명의 관객이 객석을 가득 채우고 캐나다 공영방송 CPAC. 그리고 미국의 C-SPAN을 통해 북미 전역에 방송된다.

 

‘멍크 디베이트’는 캐나다 금광재벌인 피터 멍크가 만든 세계 석학들의 대담, 토론 프로그램이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우주여행을 개인적으로 할 생각을 하지만 어떤 사람, 특히 멍크 부부 같은 사람들은 인류의 삶을 어떻게 하면 더 낫게 만들까를 고민한다.

 

이 책의 토론자 넷이 다 어떤 사람들인지 지면 관계상 일일이 소개하지는 않겠다. 어쨌든 지적인 측면에서는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다. 아마도 알랭 드 보통은 아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소설가이자 철학자이다. 하바드 출신이다.(적어도 하바드 출신이라면 이 정도의 깊이와 겸손함,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갖춰야 한다. 요즘 국내 정치권에도 하바드 출신이 적지 않다. 사뭇 다른 느낌이다.) 앞의 두 사람은 인류의 미래를 낙관한다. 뒤의 두 사람은 비관론자이다.

 

토론 배틀을 읽어 나가다 보면 이 무슨 소모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류의 미래는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있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하면 모든 지적 시스템은 붕괴할 수 있다. 토론 그 자체에 대한 의미 부여가 인류의 삶을 진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히 스티븐 핑커가 낙관론의 예시로 내건 10가지 범례 즉, 인간의 수명과 건강 / 교육 / 물질적 풍요 / 평화 / 안전 / 자유 / 지능 / 인권 / 양성평등의 지수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 지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해 보인다. 다 좋아졌다. 반면에 이를 반박하는 말콤 글래드웰은 핵무기가 80% 감소했다고 해서 그 위협과 위험의 수위가 낮아진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한다. 글래드웰은 ‘우리는 위험의 감축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위험의 재구성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매우 날카로운 지적이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비관론을 ‘비관적 현실주의’라는 말고 교정한다. 인류의 전망은 어둡지만 그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하며, 해결책의 일부는 찾아 나설 수 있다고 보는 실용적이고 이성적 판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 비관적 현실주의도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들이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기후변화의 문제가 경제(학)의 문제냐 아니냐를 놓고 벌어진 핑커와 글래드웰의 설전이다. 핑커는 여러 예 중 하나로 원자력 얘기를 하는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원자력이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도 압니다. 하지만 문제는 감축 규모에요.” 원전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하겠느냐는 것이고(화석연료를 줄이고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비용을 감당하겠느냐는 것) 그렇다면 어떤 유인책을 써야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로 정치의 영역을 언급하고 있는 셈이다.

 

네 사람의 논쟁 중에는 리처드 이스털린이나 앵거스 디턴이 얘기했던 ‘상대적 빈곤’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소득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더 이상 소득 증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앵거스 디턴은 이를 연봉 7만 달러 수준으로 규정한 바 있다. 연 8000만원 정도를 버는 사람은 연봉이 1억이나 1억 2000이 된다 해도 더 이상 행복감을 느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 모든 논쟁을 지면으로 지켜보면서 윤석열이라는 대권 주자가 후쿠시마 원전 얘기를 하기 전에, 그리고 밀턴 프리드먼 얘기를 하기 전에 이 책 ‘사피엔스의 미래’를 읽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읽지 않겠지만. 그리고 읽어도 뭔 소리인 줄 모르겠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읽고 나서도 의도적으로 안 읽은 척, 딴 소리만 하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지적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격렬한 토론을 벌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중간에 상대의 말을 끊고 들어가는 일은 다반사다. 상대에 대해 비아냥 거리고(말콤 글래드웰은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를 폴리아나 부부로 부른다. 소설 ‘폴리아나’에 나오는 어리석을 정도록 낙천적인 여성에 비유한 것이다.) 외모에 대한 비하 발언(대머리, 곱슬머리)도 서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대한 예의만큼은 잃지 않는다. 선은 넘지 않는 것이다.

 

민주당의 후보 경선 토론 주자들이 이 ‘멍크 디베이트’를 눈여겨봤으면 싶다. 후보 경선이 격이 떨어지고 천박한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좀 지적이거나 그렇게 돼 가야 한다. 지성적이 되는 게 먹고사는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얘기하는 건 1·4 후퇴 때, 흥남부두 철수 시절에나 하는 얘기다. 젊은 세대들도 자각해야 한다. 유재석은 좋은 친구지만 ‘유퀴즈 온 더 블록’ 같은 버라이어티 TV 프로그램만이 다는 아닌 것이다. 역사를 정면으로 배울 생각을 해야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같은 프로그램으로 배울 일은 아니다. 지적 관심의 증대가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를 진화시킬 것이다. 특히 지금의 한국 사회가 그렇다. 책 ‘사피엔스의 미래’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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