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7 (금)

  • 구름많음동두천 16.2℃
  • 맑음강릉 20.6℃
  • 구름많음서울 16.8℃
  • 구름많음대전 18.4℃
  • 구름많음대구 16.9℃
  • 구름많음울산 17.3℃
  • 구름조금광주 19.1℃
  • 구름많음부산 19.6℃
  • 구름많음고창 ℃
  • 구름조금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6.7℃
  • 구름많음보은 16.2℃
  • 구름많음금산 17.6℃
  • 구름많음강진군 18.4℃
  • 흐림경주시 14.9℃
  • 구름많음거제 20.1℃
기상청 제공

[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가짜 세상에서 녹색 기사가 전하는 진짜 이야기

㉙ 그린 나이트 - 데이빗 로워리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평론가에게도 쉬운 영화가 있고 어려운 영화가 있다. 장르영화는 쉽다. 장르 안의 규칙을 잘 보면 되니까. 대체로 할리우드 영화가 그렇다. 반면에 오랜 역사의 얘기나 전설, 설화, 민담을 소재로 한 유럽 영화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든다. 거기에다 현대와 연결되는 상징, 기호들이 이것저것 붙여져 있기까지 하면, 쉽사리 그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숲과 나무의 경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진다.

 

최근 국내 개봉돼 예상밖에, 비교적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그린 나이트’가 그런 작품에 해당한다. 기대 이상의 인기는 이 영화가 ‘반지의 제왕’을 쓴 J.R.R. 톨킨의 1925년 원작 ’가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를 원작으로 하고 있어서일까. (톨킨은 이를 14세기에 쓰여진 시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 그렇다면 많은 젊은 층 관객들이 이미 이 원작을 섭렵했고, 그것이 영화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무척 궁금해한다는 얘기일까. N차 관람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영화가 갖는 깊은 상상력때문인가, 아니면 몇 번을 봐야지만 완벽하게 이해가 갈 만큼 이야기가 복잡해서인가.

 

 

실제로 영화는 온갖 상상의 역사적, 정치적, 사회학적 기호로 가득 차 있다. 예컨대 영화 후반에 나오는 거인 여성들(마치 진격의 거인의 여성들 같은)은 누구인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궁금한 것이 많아져 오히려 유쾌해진다. 어렵지만 또 보고싶어 하는, 바로 그 역설이야말로 이 영화에 대한 흥미와 관심, 지지를 높이고 있을 것이다.

 

‘그린 나이트’는 아서 얘기다. 아서왕의 전설에 나오는 한 인물을 콕 집어서 다시 스토리로 만든 일종의 스핀 오프(spin-off), 곧 외전(外傳)이다. ‘그린 나이트’의 주인공은 아서의 조카, 가웨인 경(卿)이다. 정확하게는 가웨인이 작위를 받기 전, 청년시절에 경험하는 일종의 성장담이다.

 

아서왕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시킨다. 그가 보여준 낭만의 영웅담을 기억하게 한다. 아서가 뽑은 엑스칼리버의 얘기는 모르는 이가 없다. 존 부어맨 감독은 1981년 아예 이 검(劍)의 얘기만을 소재로 ‘엑스칼리버’를 만든 바 있다.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오몬드가 나왔던 1995년 영화 ‘카멜롯의 전설’은 또 어떤가. 아서가 이끈 원탁의 기사 중 원외 멤버였던 랜슬롯은 아서의 지극한 아내 귀네비어와 사랑에 빠진다. 그 달콤한 불륜이라니.

 

 

클라이브 오웬 주연의 2004년 작 ‘킹 아더’는 조금 더 역사성을 띠는데, 여기서 아서는 로마군의 일원으로 나온다.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를 배경으로 지금의 잉글랜드 땅인 브리튼에 앵글로 색슨족이 침략하자 이를 물리친 이가 바로 로마-브리튼 장군인 아서였다는 설정이다. 당시 브리튼은 로마령이었고, 로마는 현지 브리튼족을 내세워 대리 통치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서의 뿌리는 사실 켈트족이다. 어쨌든 이렇게 아서 얘기만 해도 무궁무진하다.

 

거기에 마법사 멀린의 얘기까지 합치면 실로 한도 끝도 없어진다. 멀린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가 바로 아서의 여동생인 모건이다. 모건은 여자 마법사다. 아서는 모건과 근친의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이를 하나 얻는다. 그게 바로 가웨인이다. 그런데 이 이상한 관계의 얘기는 그동안 그다지 내세워지지 않았다. 숨겨져 있거나 잘 쓰여지지 않는 얘기이다.

 

J.R.R. 톨킨이 쓴 원작에서 주인공 가웨인은 이미 기사이지만 영화에서는 아직 기사가 안 된 철없는 청년으로 설정돼 있다. 따라서 영화는 한 청년의 성장기 쪽에 더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스스로 깨달아 가는 성장 스토리…라고 얘기를 하기 전에 줄거리를 살짝 정리할 필요가 있다. 영화 ‘그린 나이트’는 설령 스포일러가 된다 하더라도 미리 얘기를 듣고 가서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저런 일이 벌어지는지 따라갈 수가 없다.

 

 

때는 크리스마스이고 아서왕이 늙고 병들어 가고 있을 때이다. 아서왕은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자신의 조카인 가웨인을 옆에 앉힌다. 그는 왕위를 조카에게 물려줄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가 아직 어리다는 것이다. 원탁의 기사들과 ‘우리가 색슨을 물리칠 때…!!’라며 축배를 들려는 찰나 갑자기 녹색 기사(그린 나이트)가 들이닥친다. 그리고 한 가지 게임을 제안한다. 자신의 도끼로 자신을 베는 자에게 1년 후 다시 만날 때 똑같이 상대를 베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 용기가 있는 자 나오라고 한다.

 

그러자 대뜸 어린 가웨인이 나선다. 그리고 그는 녹색 기사의 머리를 벤다. 그런데 웬걸, 녹색 기사는 잘린 자신의 머리를 들고 말을 타고 떠난다. 1년 후에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가웨인은 꼼짝없이 1년 후에 머리가 날아가게 생겼다. 이때부터 가웨인의 고민이 깊어진다. 그리고 1년은 정말 금세 지나간다. 가웨인은 녹색 기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의 녹색 교회를 향한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가웨인은 여정에서 친절한 척, 그의 물건을 탈취하는 소년 도둑을 만나기도 하고 목이 잘린 성녀 위니프레드를 구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의 곁은 붉은 여우가 따라 붙는다. 가웨인은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나 버틸락 성에 잠시 머물게 된다. 성주는 가웨인이 떠나기 직전 그가 머무는 동안 갖게 된 각자의 획득물을 나누는 게임을 하자고 한다.

 

 

3일 동안 가웨인은 성주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는데 그는 사정(射精)을 할 만큼 욕정을 느끼면서도 그녀와의 통정은 끝내 거부한다. 여자는 그에게 마법의 허리띠를 주는데 이건 가웨인이 여정을 시작하기 전 마법사인 엄마가 그의 허리에 둘러준 것이다. 가웨인은 성주 아내로부터 얻은 획득물을 성주와 나누지 않는다. 가웨인은 허리띠를 두른 채 녹색 기사를 만나고 그에게 머리를 자르라고 목을 내민다.

 

‘그린 나이트’에는 한 청년의 성장기를 통해 정직과 명예, 인생에서 지켜야 할 진정한 가치, 그 자아 실현에 대한 얘기가 들어 있는 한편(이 모든 것은 아들을 어른으로 키워 내려는 엄마 마법사 모건의 농간이 개입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녹색기사로 대표되는 타자(他者)의 내면화, 곧 나 아닌 타인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 가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녹색 기사는 곧 자연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류가 당초 자연과 약속했던 것에 대해 강조하는 얘기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꼭 구미에 맞는 분석이 아니다. 그보다는 다분히 체제 전복적이다.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구 시대의 특성들이 여성성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셈이다.

 

 

마법사도 엄마, 여자이다. 성녀 위니프레드, 붉은 여우, 거인인 여성들, 그리고 성주의 아내 등등까지 이 영화의 주요 동력은 다 여성이다. 전설과 구담(口談)의 주체가 여성으로 이전됐음을 느끼게 해 준다. 그건 곧 지금 시대의 변화된 모습을 은유하는 것이다.

 

‘그린 나이트’는 실로 오랜만에 경험하게 되는 ‘읽는 영화’이다. 그 풍부한 구어체의 어법에 놀라게 된다. 이야기가 전해지는 구전과 입소문의 방식은 2000년이 넘었다. 문학은 한 천년쯤 됐다. 영화는 기껏 백년이 갓 넘었다. 영화가 결코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의 혀 끝을 따라 잡지 못하는 이유다. 문학을 능가하지 못하는 이유다.

 

톨킨의 위대한 서사 문학을 훌륭하게 영화로 받아 적은 데이빗 로워리의 연출 능력은 당분간 두고두고 회자(膾炙)될 것이다. 진짜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가짜의 얘기만이 판치는 세상이다. ‘그린 나이트’는 진짜의 이야기를 듣고, 보는데 있어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다. 오랜만에 구전 설화를 실컷 즐기시기들 바란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