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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의 광고로 세상읽기] ③ 광고는 선인가? 악인가?

 

1.

광고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핵심적 사회제도라고 말하면 놀라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이 내용을 가장 명확히 설명한 것이 천재적 카피라이터 어네스트 엘모 컬킨스의 소비자 공학(consumer engineering) 개념입니다. 1920년대는 거품경제라 불릴 만큼 미국의 산업생산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기입니다. 문제는, 심각한 사회경제적 양극화 때문에 상품은 시장에 쏟아져 나왔지만 노동자계급의 가처분소득이 크게 부족했다는 겁니다. 이처럼 수요를 초과하는 과잉생산은 제품가격 하락과 소비부진을 일으켰고 미증유의 디플레이션이 이빨을 드러냅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소비자 공학입니다. 시장의 공급과잉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광고라는 도구를 통해 소비자 마음속에 이미 구입해서 사용 중인 제품에 대한 ‘의도적 혹은 계획적 진부화(artificial or planned obsolescence)’를 촉발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가지고 있는 물건에 싫증이 나게 만드는 거지요.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욕구를 무기로 끊임없이 신제품을 구입하도록 부추기는 것. 바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유지시켜주는 광고의 마법입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사이클 반복을 가능케 해주는 가장 강력한 사회제도, 그것이 광고인 겁니다.

 

2.

시인이자 문화사가인 하루야마 유키오(春山行夫)는 1660년 11월 영국 신문 <메르쿠리우스 폴리티쿠스(Mercurius Politicus)>에 게재된 정제(錠劑)약 광고를 신문매체에 노출된 최초의 허위과장광고라고 지적합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카피가 나옵니다. “이 약은 폐결핵, 기침, 천식, 구취, 감기 등에 좋고 폐에 관계된 어떤 병도 낫게 합니다. 또한 각종 유행병, 전염병, 위장 장애, 간 해독에도 좋습니다.”

 

이런 광고가 나쁜 광고입니다. 독일의 세균학자 코흐가 결핵 병원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을 최초로 발견해서 학회에 보고한 것이 1883년입니다. 해당 광고가 나온 지 무려 223년이 지나서 말이지요. 원인균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이 치명적인 전염병을 치료해준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세상을 속이는 터무니없는 허위과장인 거지요.

 

광고의 도덕성 문제는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중요한 이슈입니다. 요즘 대세로 부상 중인 타기팅 광고(targeting advertising)가 그렇습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최근 검색했거나 개인적 관심 가진 제품 광고가 꼭 집어낸 듯 튀어나오는 것에 놀란 경험 있으시지요? 슈퍼컴퓨터와 AI를 통해 온라인 접속자의 빅 데이터를 알고리즘으로 분석한 다음, 개인의 필요와 욕구에 딱 맞춘 광고를 노출시키는 방식입니다.

 

거대 IT기업들이 동의도 받지 않은 소비자 정보를 이렇게 마음대로 가공해서 이윤을 취하는 행동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걸까요? 광고는 지난 수백 년 간 그랬듯이 지금도 여전히 ‘탐욕의 용병’이 되어 세상에 해를 끼치는 존재는 아닐까요?

 

저의 대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광고가 세상을 더욱 좋게 바꾸는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사례들이 증거입니다.

 

3.

2015년 집행되어 세계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고, 거의 모든 국제광고제를 휩쓴 것이 <자유를 위한 홀로그램(Hologram for Freedom)> 캠페인입니다.

 

 

이 캠페인은 광고회사 DDB스페인이 여러 방송사 및 스튜디오와 힘을 합쳐 진행했습니다. 당시 스페인 당국은 의회 및 기타 정부 건물 근처에서 모든 시위를 금지시켰습니다. 심지어 시위 내용의 문서 전달이나 온라인 게시에 대해서까지 최대 60만 유로의 벌금을 매기는 법을 통과시켰지요. 악법 중의 악법 ‘시민안전법’이었습니다.

 

이 조치에 저항하여 DDB스페인의 크리에이터들은 역사상 최초의 홀로그램 시위를 조직합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을 펼치고 이에 따라 응모된 수천 개 콘텐츠를 편집하여 디지털 홀로그램으로 만든 겁니다. 그리고 마드리드 의회 건물 앞에서 상영한 거지요. 이 홀로그램 시위방식은 직접 사람이 모이지 않았으니 시민안전법을 위반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독창성과 파괴력에서 물리적 시위 이상의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킵니다.

 

 

세계 주요 언론이 대대적으로 시위를 보도했고 결국 법안 폐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광고가 디지털이라는 신무기를 사용하여 거대한 사회적 순기능을 실천한 거지요. 이 캠페인은 첨단 기술과 공공적 가치의 결합 차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동시에 세상을 건강하게 바꾸는 광고의 역할에 대한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했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전자 ‘룩앳미(Look at me)’ 캠페인이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룩앳미'는 자폐 아동의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치료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입니다. 자폐아들은 타인과 눈을 맞추는 면대면(面對面) 커뮤니케이션을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기기와는 쉽게 친해지는 점을 착안한 거지요.

 

 

의사, 교수, UX디자이너 등이 힘을 합쳐 2015년 개발한 이 앱은, 사용 후 8주 만에 참여 아동의 60퍼센트가 눈 맞춤을 시작하고 상대방 표정 이해 능력이 크게 높아지는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룩앳미 캠페인’은 이 같은 앱의 개발과 활용, 드라마틱한 결과에 대한 스토리를 찬찬히 기록한 다음 그것을 콘텐츠로 만든 것입니다. 해당 기업의 기술력과 사회적 책임, 나아가 마음을 울리는 감동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둔 거지요.

 

4.

과연 21세기의 광고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지난 수백 년간 퍼부어진 비판처럼, 그저 물건만 팔아먹으면 그만인 판매지상주의의 노예 역할을 벗어나지 못할까요. 아니면 방금 보여드린 사례처럼 사회적 공공선(公共善)에 도움을 주는 ‘착한 사마리아인’ 역할을 수행할까요.

 

주목할 것은 정치, 경제, 교육, 법률, 복지 등 모든 사회제도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공존한다는 겁니다. 광고도 마찬가지고요. 칼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의사가 환자의 목숨을 살리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강도가 사람을 해치는 흉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광고를 만드는 주체들 뿐 아니라 그것을 수용하는 시민들의 손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광고의 가치중립적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그 유연한 힘을 활용하여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과업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가 아닌가 합니다. (이윤 창출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의 교묘한 광고 설득에 무기력하게 세뇌당하지 않는 일. 거꾸로 환경 감시자 역할을 통해 광고의 사회적 기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압박이 그것입니다.

 

현대광고가 태어난 미국의 경우 이미 1891년에 최초의 소비자운동단체가 태어났지요. 그리고 1899년 광고 폐해, 부당가격, 품질불량 문제를 비판하고 사회적 공공성을 촉구하는 전국소비자연맹(The National Consumer‘s League)이 결성되어 1세기 이상 성과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시민운동이 존재합니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그 지향이 좀 더 체계화되고 좀 더 강력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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