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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노바디가 영웅이 되는 세상을 꿈꾼다면

㉚ 프리 가이 - 숀 레비

 

영화 ‘프리 가이’ 속 주인공 프리 가이는 프리 시티 안에 사는 인물이다. 그러니까 ‘프리 시티’라는 온라인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얘기다. 온라인 게임을 만들거나 그런 회사를 둘러싼 막대한 이권 다툼의 얘기이거나 하는 것만이 아니다. 실제로 온라인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온라인 밖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제 영화의 상상력은 머릿 속과 머리 밖을 연결시킨다. 꽤나 복잡해진다. 그러나,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얘기 하나는 기가 막힌다. 그렇다고 요즘 젊은 ‘애’들 생각과 취향은 정말 남다르군…하지는 말라. ‘아차’하게 된다. 이걸 만든 감독 숀 레비는 1968년생 50대 중반 아저씨다. 영화를 만들고 보는 것, 그리고 세상을 살고 이해하는 것이 결코 나이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나이 먹은 장년층들, 이런 영화 본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나는 컴퓨터 게임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징징댈 필요도 없다. RPG(Role Playing Game) 게임이 뭔지, 그게 어떤 건지 들어 보지도, 해 보지도 않았다고 ‘성질’을 낼 필요도 없다. ‘프리 가이’는 영화를 본 지 한 10분쯤 지나면 모든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그만큼 스토리가 좋다. 아무리 온라인 게임을 영화로 만든다 한들, 아니면 설령 온라인 게임 그 자체이든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임을 생각하게 한다. 스토리의 힘!!

 

 

그래도 ‘프리 가이’를 단박에,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딱 하나의 용어는 알아야 된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NPC라는 말이다. 논 플레이어 캐릭터(Non Player Character)이다. 포털 백과사전에 따르면, 롤 플레이를 기반으로 한 게임에 등장하는 ‘플레이어 외의 캐릭터’를 말한다.

 

이 NPC는 AI, 곧 인공지능이 조종한다. 온라인 게임 속에서 서비스 공급업체가 직접 조종하는 캐릭터란 얘기다. 게임 속의 몬스터나 상인, 스토리 진행 캐릭터들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배경 캐릭터들을 말한다. 주요 등장인물들을 위한 ‘병풍’ 캐릭터이다. 게임 속 악당들의 희생양 혹은 주인공들이 구해주는 캐릭터들이다. 꼭 있어야 하지만 어떤 캐릭터가 돼도 상관없는 등장인물들이다. 이는 곧 현실에서는 기억될 만한 인물들이 아니라는 얘기다. 현대사회에서 조직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노바디다.

 

영화 ‘프리 가이’에서 주인공 프리 가이(라이언 레이놀즈)는 NPC이다. 게임 속에서 그는 은행원이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금붕어에게 인사하고, 출근하고, 일하고, 은행강도에게 당하고, 목숨을 부지하고, 다시 그다음 날을 맞는 등등이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이 게임 속에는 오로지 선글라스를 낀 캐릭터들만이 주요 역할을 한다. 빌런, 곧 악당이거나 아니면 이들을 물리치는 슈퍼 히어로들이다.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등급이 있는데 예를 들어 주인공 슈퍼 히어로인 밀리(조디 코머)같은 경우 악당을 많이 없애고, 그들의 무기를 많이 빼앗고, 이런저런 페이버(favor)를 많이 받아서 등급이 거의 200까지 올라가 있다. 그런데 그렇고 그런 히어로는 기껏해야 두 자릿 수이거나 한 자릿 수에 불과하다. 온라인 게임 밖에서는 플레이어들이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프리 가이 캐릭터는 플레이어가 없다. 회사가 지정한 AI가 정해진 값에 의해 조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게임 안에서 프리 가이가 갑자기 히어로 캐릭터의 전유물인 선글라스를 쓰게 된다. 그리고 갑자기, 그리고 점점 더 히어로 캐릭터로 변신해 간다. 등급이 1, 2 수준이었던 캐릭터가 나중엔 2백 몇십까지 올라가서는 엄청난 능력의 캐릭터가 된다. 그래서 게임 밖 현실에서는 난리가 난다. 배경에 불과했던 이 캐릭터를 과연 누가 조종하는 것이냐고 말이다.

 

 

도대체 누구인가? 이 게임을 차지하려는 해커의 소행인가. 해커가 개발해 놓은 어떤 장치가 AI로 하여금 스스로 진화하게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돼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게임 밖의 전쟁은 게임 안의 전쟁으로 극화되고, 그렇게 발전된 게임 스토리와 게임 안의 전쟁은 현실세계로 다시 확대된다. 게임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게임이 된다. 안이 밖이 되고 밖이 안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게임 속 수많은 NPC들, 배경 캐릭터들이 자기 역할들을 부여받게 된다는 것이다. AI가 진화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바로 그 점이야말로 이 영화가 갖는 정치적 의미의 핵심 포인트이다. 현실 속에서도 사실은 수많은 익명의 대중들 한 명 한 명이 주체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이 대중이 집단으로 지성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집단지성) 잠재성을 늘 지니고 있음을 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프리 가이’의 안에는 나름 심오한 ‘민중주의’가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역시 50대 중반의 감독이 만든 영화같다는 생각을, 영화 후반에 갖게 되는 이유다.

 

 

하여, 이 영화는 온라인 게임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거나 앞으로도 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꽤 유의미한 작품이다. 온라인 게임이 갖고 있는 현재성, 그 사회적 연결성을 깨닫게 해 준다. 현실 속 신구 세대의 연결점이 무엇인지를 은근히 갈파시킨다. 무엇보다 현실 세계가 얼마나 가상의 무엇과 연결돼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 상상력의 한계가 계속 확장되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이 영화에 비교적 높은 평점을 주게 되는 이유다.

 

영화 ‘프리 가이’를 두고 ‘트루먼 쇼’가 연상된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전혀 아니다. 그보다는 와쇼스키 자매 감독의 ‘매트릭스’에 가깝다. ‘매트릭스’도 컴퓨터 안과 밖을 오가며 세상의 질서를 회복해 나간다. ‘매트릭스’가 묵시록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이라면 ‘프리 가이’는 낙관적이고 유토피아적이다. 그 희망이 다소 순진해 보여서 탈이지만.

 

라이언 레이놀즈의, 라이언 레이놀즈에 의한, 라이언 레이놀즈를 위한 영화다. BBC 드라마 ‘킬링 이브’의 킬러 이브 역으로 큰 인기를 모은 조디 코머도 돋보인다. 두 사람을 보는 재미도 삼삼하다. 주말에 ‘픽’할만한 작품으로 권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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