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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적어도 007은 세상을 구하려고 한다

㊲ 007 노 타임 투 다이 - 캐리 후쿠나가

 

자, 007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제임스 본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이제 너무 늙었고 허점투성이다.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너무 많이 휘둘린다. 영국 첩보조직 MI6로서는, 그 수장 M으로서는, 눈 딱 감고 폐기처분해야 할 요원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모양이 빠지지 않을까.

 

여기까지는 영화 내적인 문제의식이다. 이 문제는 묘하게도 영화 외적인 것과 연결된다. 영화사 유니버셜은 제임스 본드 역의 다니엘 크레이그와 계약 관계가 끝나 간다. 크레이그는 한국 나이 55세. 007의 액션 연기를 하기에 쉬운 나이가 아니다. 무엇보다 섹시하지가 않다. 007 캐릭터의 주요 항목 중 하나가 섹시함인데, 다니엘 크레이그에게는 더 이상 본드 걸과의 베드신이 별로가 됐다. 역할 교체가 필요한 시기가 왔다. 젊고 야망적인 배우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할 것인가. 다니엘 크레이그를 어떻게 모양 빠지지 않게 내보낼 것인가.

 

다니엘 크레이그 출연의 마지막 007 영화 ‘노 타임 투 다이’를 두고 젊은 세대들 간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대체적으로 지루하고(러닝 타임이 무려 2시간 43분이다) 빌런(악당)들의 죽음이 너무 쉽고 간단하게 이뤄지며 액션도 새로울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런 입소문이 꽤 많아서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이번 007 영화는 분명 실패작일 거라는 예감을 갖게 한다.

 

 

틀렸다. 이번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나름 걸작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지난 후 곰곰이 복기해 보면 볼수록 감독인 케리 조지 후쿠나가의 스토리 텔링 능력, 곧 007이 어떻게 임무를 마감해야 하는지, 그 지향점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캐릭터에 대한 공감 능력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후쿠나가는 미국 최고의 걸작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 시즌1의 감독이었다. 그 기대치에 대해 한 점 모자람이 없다.

 

돌이켜 보면 나이 먹은 세대의 관객들이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혹평에 동의하지 않은 것은 이 영화가 갖는 슬픈 기조, 멜로의 감성 때문인 듯싶다. 이번 007은 슬프다. 그 점이 많은 기성세대들의 마음을 기울게 할 것이다. 텍스트 구조상으로는 케리 조지 후쿠나가가, 다니엘 크레이그가 나온 007 버전의 모든 작품을 동원하고 그 이야기의 종결 구조를 짰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노 타임 투 다이’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전작들인 ‘카지노 로얄’, ‘스카이 폴’, ‘스펙터’를 모두 합치되 줄이고, 포함하되 생략한다. 앞선 세 작품에 리스펙트를 바치되 그걸 뛰어넘는다. 누가 감히 이번 007을 전작에 비해 모자라다고 근거 없는 비난을 일삼고 있는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행태다.

 

 

이번 007 영화의 특징은 연속성과 영속성이다. ‘카지노 로얄’과 ‘스카이 폴’, ‘스펙터’에 이르기까지 더블오세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잊은 사람은 이번 이야기를 언뜻 이해하기 쉽지가 않다. 본드가 왜 그러는지, 그를 둘러싼 모든 인물들, 곧 말로리M(랄프 파인즈)이 왜 저런 일을 벌였는지(과연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머니페니는 본드를 왜 돕는지(본드와 머니페니 사이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녀가 예전에 본드를 쏜 적이 있다는 반어적 대사를 이해할 수 없다), Q 역시 왜 본드를 무작정 지원하는지 알 수 없다. 이야기의 씨줄 날줄을 따라갈 수 없게 된다.

 

빌런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블로펠드(크리스토퍼 왈츠)가 왜 본드에게 ‘쿠쿠’ 소리를 내며 놀리는지 그 내심을 이해할 수가 없다.(그건 사실 열등감이다) 모든 음모의 시작은 블로펠드가 이끌었던 스펙터 조직에서 비롯됐었다. 본드가 현재 사랑하는 여인 마들렌(레아 세이두)의 아버지는 MI6와 스펙터의 더블 에이전트, 곧 이중첩자였다.

 

 

블로펠드는 본드에게 마들렌은 스펙터의 딸이라는 이상야릇한 소리를 한다. 스펙터 조직이 블로펠드에서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가는 모양이고, 그 과정이 마들렌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그건 영화가 끝날 쯤 돼서야 전모가 드러난다. 눈치 빠른 관객은 영화 오프닝에서 그걸 알아챌 것이다. 어쨌든 이야기의 전사와 후사가 갖는 이음새를 알아채는 데 있어 전편에 대한 기억의 소환 없이는 불가능한 작품이 이번 007이다. 그 연결점을 알면 영화가 꽤 흥미롭다는 것을 알게 된다.

 

CIA 요원 펠릭스(제프리 라이트)는 007이 거의 유일하게 신뢰하는 동료 첩보원이다. 근데 왜 그러는지는 ‘카지노 로얄’에 나온다. 펠릭스는 본드의 슬픔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이다. 그 슬픔의 기저에는 배스퍼(에바 그린)가 있다. 이번 007 영화의 초반 장면은 본드의 슬픔이 꽤나 컸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제임스는 배스퍼에게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한다. 그는 그녀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가. 오히려 배스퍼가 본드를 배신하지 않았었던가. 배신과 사랑의 이중주, 그 양면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장면의 본드를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악의 집단 스펙터에 하나 혹은 둘씩 자신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본드는 마들렌에게 얘기한다. 당신은 내게 가장 큰 선물을 줬다고. 그것은 무엇일까. 결국은 사랑이다. 007도 사랑을 한다. 사랑을 했다. 그는 마들렌을 사랑하지만 그 이전에는 배스퍼를 사랑했다. 배스퍼의 사랑을 가슴에 묻고 마들렌과의 생을 새로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007은 결코 울지 않지만 그런 그를 보게 되는 우리는, 그의 가슴 아픈 퇴장을 바라보는 우리는 눈물이 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말로리 M의 얘기가 꽤나 사람을 서정적으로 만든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기 위해 살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007 영화가, 샘 멘더스가 연출한 이후 이번 후쿠나가가 연출하기까지 줄기차게 보여 주고자 하는 생의 철학의 메시지이다. M이 이런 말을 할 때 본드의 사람들은 다 함께 있다. 머니페니와 Q, 또 다른 조력자 태너(로리 키니어) 그리고 노미라는 이름의 여성(라샤나 린치). 그들은 왜 본드없이 따로 모이게 됐을까.

 

 

이번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허투루 봐서는 안 될 작품이다. 영화의 내면을 놓치면 안 될 일이다. 그렇게 하면 이번 007 영화가 가지는 연속성과 영속성, 이 시리즈물의 역사성을 무시하는 처사가 된다. 심지어, 어떤 노세대 관객들은 극장 문을 나서면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슬프기 때문이다. 이제 바야흐로 제임스 본드의 시대가 실질적으로 종언을 고했기 때문인데 그건 곧 노장 세대의 퇴장을 얘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007 영화를 두고 혹평하거나 비난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007을 미워할 수는 없다. 007은 사랑받아야 할 존재다. 그것도 영원히. 특히 제임스 본드라면 더욱더. ’007 노 타임 투 다이’를 보기 위해 전작인 ‘카지노 로얄’부터 ‘스카이 폴’과 ‘스펙터’를 다시 뒤져 보는 일은 다소 귀찮을 수 있겠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항변도 들린다. 허구헌날 싸우는 정치판 뉴스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선택하시기들 바란다. 적어도 007 제임스 본드는 세상을 구하려고 한다. 그게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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