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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잔재 청산 및 항일 기획시리즈] ⑪ 무용으로 승화된 항일의 역사

과거 중국서 우연히 만난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영감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역사적 의식 전달 위해 제작
공연 엔딩 '아리랑', 민족정서인 '한' 담아
최진수 예술감독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대한 사실을 알고 의식하는 것이 항일"

 

“그들의 생활은 명랑함과 심각함이 기묘하게 혼합됐다.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므로, 생명이 지속되는 한 마음껏 생활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기막히게 멋진 친구들이었다.”

 

미국의 작가 님 웨일스는 자신의 저서 ‘아리랑’에서 무장독립운동을 펼치던 의열단에 대해 이같이 묘사했다.

 

1919년 만들어진 의열단은 1929년 해체될 때까지 무력투쟁을 통한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워왔다.

 

머나먼 이국 땅 상해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다는 그들의 숭고한 정신은 책, 영화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후대인 우리들에게 전해진다.

 

경기문화재단의 ‘2021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및 항일추진 민간공모 지원사업’에 선정돼 무대를 올린 ‘서울발레시어터’의 무용 ‘화양연화’는 일제강점기 민족의 한과 죽음을 각오한 채 독립에 대한 열망을 누구보다 뜨겁게 태운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최진수 예술감독이 이러한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에는 운명적인 우연이 있었다.

 

그는 “예전에 중국 상하이에 잠시 간 적이 있다. 그때 길을 걷다가 우연찮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발견했다. 그날의 경험이 영감이 돼 이번 작품을 기획했다”며 “공연을 준비하며 독립운동가 한 명 한 명을 찾아 조사를 했었다. 사실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에 맞춰 4월 29일 공연을 선보이고 싶었는데 여러 문제로 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가상의 인물 강준의 삶을 통해 독립을 향한 헌신과 눈물, 당시를 살아가던 젊은이들의 열정을 담고자 했다는 최 감독. 이런 작품을 만든 그였지만 과거에는 ‘항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한다.

 

최 예술감독은 “나도 어렸을 때는 역사적인 부분에 대해 관심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매체를 통해 한국사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강의나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중년의 무용가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던 시기였는데 그런 강의를 듣다 보니 관심이 생기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체의 전대 선생님이나 예술감독님들께 항상 ‘발레단이라는 것은 항상 사회에 공헌을 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관심이 가던 역사를 화려한 춤으로 만들어 관객들에게 선사하면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의식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음악과 소품, 의상 등 작은 것까지 그의 손이 거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최 감독 역시 작품 제작에 있어 빠져들었다고 했다.

 

작품 ‘화양연화’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의식을 전하고 싶다는 최진수 예술감독.

 

그는 “요즘 세대들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의식이 우리 때보다 적은 것 같다. ‘욱일승천기’ 등 일제강점기를 그려낸 디자인이나 제품을 소비하는 모습을 보면 역사의식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최 감독은 “그렇다고 반감을 갖자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한 시대다 보니 일본의 제품을 사용할 수는 있으나 이러한 의식을 갖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작품을 조금 더 다듬고 발전시켜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한편, 이같은 정신을 전달하고 싶다는 그는 공연의 마지막 부분인 ‘아리랑’을 가장 중요한 대목으로 꼽았다.

 

 

그는 “공연 마지막 장면이 아리랑이다. 관객들의 입장에선 뜬금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 앞서 화려한 장면들이 끝나고 난 뒤 한국인들의 ‘한’을 표현한 부분이다”라며 “사람이 죽은 후 공간, 사람이 태어나기 전 공간, 아무것도 아닌 그런 공간을 통해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정서를 아리랑과 함께 녹여냈다”고 이야기했다.

 

그 역시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보일 정도였다고 했다. 이런 최 감독의 마음을 아는 듯 관객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운 장면도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엔딩 장면이다.

 

최진수 감독은 “마지막 장면이 호불호가 많이 갈렸던 것 같다. 클럽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가장 좋았다는 관객들도 있었지만, 아리랑이 가장 좋았다는 관객들이 많았다. 나와 같이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서양의 대표적인 무용인 ‘발레’와 한국의 아픈 과거를 합치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응당 해야 할 길이란 생각으로 묵묵히 걸었다고 했다.

 

 

그는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점이 한국에서 태어나,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해야 될 일인 것 같다”면서 “서양의 것을 받아들여 쫓아가는 것도 좋지만, 한국적인 것과 그런 색채를 입힌 예술은 대한민국 예술가들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즈, 스윙 음악에 맞춰 펼쳐지는 발레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한편, 그 이면에 담겨있는 의열단의 항일정신을 자연스레 스며들게 했다.

 

최 감독은 “기회가 된다면 작품을 더 업그레이드해 내년에 공연을 올리고 싶다. 가능하다면 많은 관객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곳에서 선보이고 싶다. 순수예술을 하고 있다 보니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면서 “이번 작품에서는 소품 등에서 아쉽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예산적인 측면이 괜찮다면 조금 더 자연스럽고 좋은 공연을 선사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최진수 예술감독은 항일에 대해 “작품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소속돼 있는 일본인 무용수들에게 일제강점기에 대한 콘텐츠를 보여줬다. 역사 속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고, 이를 왜곡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도 전하고 싶었다”며 “한국인, 일본인 구분 없이 사실에 대해 알아야 하고 그것에 대해 의식을 가지는 것이 지금의 ‘항일’이지 않을까 한다”고 대답했다.

 

2021년으로 26년째를 맞은 서울발레시어터는 한국이 발레 불모지 시절부터 창작 발레를 선보이며 국내 발레 전파에 힘쓰고 있다. 지난 2018년 단장을 맡아 그는 항일에 대한 창작 발레를 구상하고, 준비해 우리들에게 선보였다.

 

짧은 10년의 역사를 가진 의열단, 그들의 독립에 대한 의식과 항일에 대한 열망이 무용가들의 몸짓을 통해 여전히 살아있는 듯하다.

 

최진수 감독의 바람처럼 조금 더 발전한 작품을 통해 불꽃같았던 10년이 잊혀지지 않게, 조금 더 오랫동안 유지되길 바란다.

 

[ 경기신문 = 김도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