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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의 관규추지(管窺錐指)] 평화와 통일은 거저 오지 않는다

 

 

꽤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함께 생각해볼 만한 일이라 적는다. 지난 9월 15일에 남북한, 중국, 일본에게 중요한 군사외교적 사건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이날 중국 외교부장 왕이는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를 강조했다. 미국이 5-아이즈, 오커스 등을 결성하며 동북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려 하자, 대한민국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중국을 제치고 미국에 붙으면 재미없을 줄 알라고 대놓고 을러댄 것. 그 시각, 북한은 유엔 제재 대상인 탄도미사일을 동해로 쐈다. 이틀 전 순항미사일과 달리 탄도미사일은 심각한 군사도발이며, 북한 후견국을 자처하는 중국 체면을 깎는 일이다. 한편, 일본은 30년 만에 육자대 전군이 참가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였다. 일본이 점유 중인 센카쿠 열도에 상륙한 중공군을 퇴치하는 가상훈련이 포함되어 있었다. 중국 보고 힘으로 해볼 테면 해보라는 무력시위였다. 그리고 그날 오후 문재인 대통령은 SLBM 미사일 발사 시험에 참관했고, 우리 군은 한 번에 성공했다. 대통령이 오전에 중국 외교부장을 접견하고, 오후엔 중국 베이징이 사정권 안에 들어오는 공격 미사일 발사 자리를 참관한다는 것 역시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한국이 중국 보고 어쩔 건데? 한 거다. 왕이는 별말 없이 넘어갔지만, 중국 외교부에선 난리가 났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 재임 중 일이지만, 사드 배치는 한중 관계를 완전히 거덜 냈다. 한한령 여파로 명동 상권은 박살이 났고, 중국을 점령할 것처럼 휘몰아치던 한국 문화 콘텐츠는 중국 전역에서 쫓겨났다.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은 중국 일부였다고 말했고, 천하이 외교부 부국장이 소국이 대국에게 대항해서 되겠냐고 한 발언이 중국 지도부의 한국에 대한 속내라고 할 때, 사드 배치에 격분한 중국 고위당국자들이 한국을 짓밟아버리겠다고 마음먹은 게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드는 누가 봐도 방어용 미사일이다. 한국군이 아니라 미군이 운용한다는 게 걸리긴 하지만, 어쨌든 방어용 미사일 배치로 한한령을 발동시켰다면, 공격용 미사일 발사 실험엔 주중 한국대사 초치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나? 하지만 베이징은 침묵 중이다. 방어용 미사일 배치에 그 난리를 떨던 자들이, 정작 공격용 미사일 발사엔 침묵하고 있는 아이러니, 이게 바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명언이 웅변하는 현실이다. 한국이 군사 강국이 되는 것을 원하느냐, 원치 않느냐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군사 강국이 되어야만 우리를 둘러싼 열강들이 허튼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 이게 핵심이다.

 

나는 통일을 원하고 평화를 원한다. 국방 예산의 팽창보다 복지 예산이 늘기를 바라고, 분단 조국보다 통일 조국을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그 길로 가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군사력을 확충하고, 전시 작전권을 환수하고, 독자적인 방위 수행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무기를 누가 먼저 내려놓을 것이냐. 아무도 없다면 우리부터라도 내려놔야 하지 않느냐란 말은 국제외교 무대에서 터무니없이 나이브한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한반도가 군사적으로 강했을 때 동북아가 평화로웠고, 우리가 힘이 없을 때 전쟁이 터졌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러일전쟁이 왜 한반도에서 벌어졌는지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강한 군사력을 갖출 때 동북아가 평화로워진다는 역설을 긍정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방력 강화를 지지한다.

 

너는 전쟁에 관심이 없더라도, 전쟁은 너에게 관심이 많다.

-레프 트로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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