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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계절의 위로

 

숲 속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본다. 부드러운 청자 빛 하늘 아래는 흰 구름이 자유롭다. 구름은 호랑이 머리가 되었다가 개의 형태이더니 바로 고양이 꼴이다. 흐르면서 변하는 게 구름이다. 변하기 때문에 눈 주고 할 일없는 사람처럼 바라보기도 한다. 근자에 나는 하늘 바라보는 재미가 유별하다. 눈이 피로해도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고, 글을 쓰다 문장이 막히면 나가서 하늘을 본다. 글의 주제가 마땅치 않아도 오늘 같이 하늘을 보고 구름을 만나면서 뭔가가 머릿속에서 새롭게 뛰어내려 주기를 기대한다.

 

10월도 저물어 삼십 일이 되면 시월의 마지막 밤이 온다. 이 해도 60여 일 남았다. 계절은 겨울이란 고개를 넘어야 한다. 오늘도 숲의 그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본다. 하늘의 빛(彩)을 독창적으로 표현하고자 먼 하늘을 끝없이 바라보아도 색채감에 딱 맞는 언어를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이 들려오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이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의 마지막 가사와 리듬이 고장 난 축음기판같이 제 자리에서 돌며 내 가슴을 슬픔으로 채운다.

 

막내가 예술대학에 진학하고자 '터'라는 학원에 다니던 때다. 나도 덩달아 미래의 시간을 위해 그 학원 옆 3층에서 한국화를 배우기 위해 퇴근하고 그곳으로 가 실기를 배웠다. 그때다. 10월의 퇴근길, 막내나 나나 배고픈 시간인데 팔달로 네거리 전파사에서는 어김없이 《잊혀진 계절》을 거리가 좁다는 듯 틀어댔다. 그때 들었던 노래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이 노래가 할아버지가 된 지금도 나를 울리고 있다. 그래도 그때의 추억은 신바람이었다. 학원에서 배고픔을 참고 붓을 놀리며 기초를 닦고 있으면 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있던 후배가 나타나 지금 뭐 하고 있느냐며 ‘길목 집’이란 대폿집으로 가자고 했다. 빈속을 막걸리로 채우며 몇 순배의 술이 돌면 ‘이룰 수 없는 꿈은 잊어요.’ 하고 흥얼거려 보던 인간적인 분위가 있었다.

 

친구가 아파트 앞에 와 있으니 잠깐 나오라는 전화다. 서둘러 갔더니 진석(珍石)이라는 친구는 좌대까지 한 수석(壽石)을 곱게 싸고 덮어 상자에 넣은 채 던져주듯 하고 휑하니 돌아서 가버린다. 돌아와 조심스럽게 펼쳐 적당한 자리에 올려놓고 눈여겨보았다. 돌에는 장인의 솜씨인 듯싶은 시골 풍경의 산수화가 해가 기우는 시간을 암시하고 있다. 정지용 시인은 돌에도 피가 돈다고 했는데 이 돌에는 초가을 농가 아랫목 온기가 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부드럽고 윤기 감도는 가운데 원형의 형태를 지닌 돌을 보고 있노라면 착한 선비의 고을에 밤이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가을은 못난 내 발을 주물러주시고 씻어주시던 그분의 은혜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순간에도 ‘이룰 수 없는 꿈을 안고’ 가슴앓이를 하는 젊은 가슴들이 많다. 그들의 가슴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그들과 함께 막걸리라도 한잔 마시고 ‘잊혀진 계절’이라도 한번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