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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스타의 스타트랙] 출발(出發)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맞은 1교시 수업은 체육 시간이었다. 종이 울리자 교실 문이 열리고 체육 선생님이 들어왔다. 우리 학교는 운동부 특히 럭비부가 꽤 유명했고, 그 체육 선생님이 럭비부 담당 코치였다. 우람한 체구에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선생님은 천천히 걸어 교단에 서더니, “1번부터 10번까지 일어나 봐.”라고 했다. 참고로 반에서 가장 키가 큰 친구가 1번이었다. 그리고는 “앞에서부터 100m 달리기 몇 초야?” 하고 물었다. 우리는 1번부터 차례로 자신의 100m 기록을 대답했고, 그 당시 4번이었던 나는 본능적으로 “18초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선생님은 열 명의 대답을 모두 들은 후 두 명을 지목했고, 방과 후 럭비부실로 오라고 했다. 선생님이 그렇게 물은 이유는 키와 덩치가 크고 달리기 속도가 괜찮은 아이들을 럭비부로 데려가기 위함이었다. 덩치와 달리기, 기준은 참 간단했다. 내가 그 순간 “13초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더라면, 내 고교 생활은 아마 크게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음악의 경우,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관련 서클은 전무했고, 고교 진학 후에도 교내에서 접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는 합창단 정도밖에 없었다. 중학교 시절 이미 록키드가 된 나로서는 밴드에 관심이 있었지만, 밴드부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지나고서야 생겼다. 그리하여 막연했던 밴드의 꿈은 다시 한번 졸업 이후로 미뤄두게 되고, 안타깝게도 이런 환경은 나를 합창단이라는 차선책으로 이끌었다. 어찌 됐건 간에 기타와 베이스, 드럼 소리 대신에 피아노 반주라도 들으며 목청껏 소리 지를 수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제2 테너나 바리톤 정도를 생각하고 들어간 합창단에서 엉뚱하게도 베이스 파트에 배정되어,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내느라 학창 시절 내내 무척 힘들었다.

 

내 기억 속 그 시절은 우리의 자발적 동기와 의지의 여부가 그다지 존중받지 못했다. 간혹 용기 있는 움직임을 보여준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그리해서 우리의 대부분은 교과 과정 이외의 것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것에 대한 막연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어제 집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문이 열렸고, 그 안에는 위층에 사는 아주머니께서 타고 계셨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고개 들어 내려가는 층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찰나에 아주머니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우리 중학생 아들이 음악을 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음악을 한다면 진작시켰어야 했는데 말이지.”
 
저 아주머니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둔 친구, 선후배들이 비슷한 질문을 해오는 경우가 많다. 그들 대부분은 평범하지 않은 길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에 불안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응원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내비친다. 무작정 반대하던, 학교 선생님의 권유에 피동적으로 반응하던 우리 시절의 부모님들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아이들 역시 자신의 꿈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 적극적이고 구체적이다. 굳이 영재 교육이나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아도 자유로운 출발선을 찾아 영리하게 나아간다. 나와 내 친구들이 내딛기 어려웠던 그 한 걸음을 거리낌 없이 내디딜 수 있는 아이들을 보면 조금 부럽기도 하다. 

 

지금 아이들은 자신의 100m 달리기 기록을 억지로 거짓말하지 않아도 되고, 원치 않는 베이스 파트를 노래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만일 누군가 위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미리 걱정하지도 혹은 늦었다고 조급해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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