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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깐부’와 ‘공정’

 

“우리는 깐부잖아. 깐부끼리는 네 것, 내 것이 없는 거야.”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오징어 게임’ 속 대사다.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니 ‘깐부’(같은 편)라는 단어도 덩달아 유행어가 됐다. ‘깜보’? ‘깐부’? 뭐라고 불렀는지 헷갈리지만, 코흘리개 시절 나 역시 공터에서 구슬이나 딱지치기를 하며 동네 또래들과 깐부를 맺었다. 

 

깐부를 왜 맺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추측컨대 그 친구와 친해서였기도 했고, 친구의 깐부라는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 어린 시절에도 나에게 같은 편이 있다는 게 얼마나 듬직한 일인지, 본능적으로 알았던 게 아닌가 싶다. 

 

깐부의 취지는 ‘경제적 일심동체’였다. ‘개인 소유’는 없었고, ‘공동 소유’였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정말 그랬었나 싶다. 시작할 때는 ‘네 것, 내 것’ 없이 ‘우리 것’이라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늘 누군가는 손해 보는 공정치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깐부’라는 이유로 불평도 못 했다.

 

‘깐부’ 사이에서도 힘의 불균형은 분명히 있었다. 누군가는 더 가졌고, 누군가는 잃었다. 어떤 식으로 포장하든, 드라마 속 기훈(이정재 분)은 구슬을 가진 자가, 일남(오영수 분) 할아버지는 구슬을 잃은 자가 됐다. ‘네 것, 내 것이 없는’ 깐부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게 개인적 결론이다. 

 

갑자기 ‘깐부’ 얘기를 꺼낸 건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 때문이다. 그는 4일 서울에서 열린 미디어 오픈토크에서 ‘깐부’를 언급했다.

 

“‘오징어 게임’에서 심금을 울린 한 가지는 바로 ‘깐부’라는 아름다운 단어였다. 한국의 창작자들, 네트워크 사업자 등과 ‘깐부’ 파트너십을 맺고 싶다.” 

 

오징어 게임 흥행 이후 K-콘텐츠의 가능성을 본 넷플릭스는 ‘윈-윈’을 제안했다. K-콘텐츠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로 전파하고, 넷플릭스는 제2의 ‘오징어 게임’이 될 더 많은 K-콘텐츠를 오리지널 콘텐츠로 확보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현실에 ‘네 것, 내 것’이 없는, 그런 ‘깐부’는 없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이 흥행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입자 수가 대폭 늘었다. 심지어 주가 역시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 그러나 그 결과의 일등공신이라 할 ‘오징어 게임’은 인센티브 없이 제작비의 110% 수준인 약 240억 원만 지급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되자 넷플릭스 측은 ‘정당한 수익 배분’을 위해 노력하겠다 했지만, ‘오징어 게임’ 속 ‘깐부’로 여겼다면 진즉 이뤄졌어야 했다. 여전히 이날 오픈토크에서 K-콘텐츠 성공 이후 IP(지적재산권) 공유, 판권 등 추가수익 분배에 대한 상생방안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넷플릭스는 국내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와도 망 사용료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그동안 어떤 문제에도 대외 접촉을 최소화했던 넷플릭스가 이례적으로 부사장까지 방한하게 한 것도 망 사용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국회가 망 사용료 의무화 입법 움직임을 보이자, 현재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망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는 넷플릭스 측은 조급해졌다. 한국에서 망 사용료 지급 선례가 생기면 연쇄적으로 다른 나라에도 지급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어느 나라도 콘텐츠 ‘초 거대 공룡 기업’ 넷플릭스를 상대로 망 사용료를 요구할 수 없었다. 법안도 정비되지 않았고, 힘은 불균형한 관계였다. 이 관계를 잘 아는 넷플릭스는 어느 협상 테이블에서든 자신들의 ‘우월적 지위’를 잘 활용해왔다. 

 

때문에 넷플릭스 측은 SK브로드밴드(SKB)와 소송 중에도 원론만을 고집하며 협상도 중재안도 거부해왔다. 그랬던 넷플릭스가 입법 움직임이 일자 이례적 방한을 해서는 “한국과는 깐부”라면서 “SKB와 상생을 희망하며 한자리에 앉아 논의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러한 가필드 부사장의 발언에 SKB는 “수차례 협상 의사를 전했으나 방송통신위원회 재정을 거부하고 사법부의 판단을 받겠다고 나선 건 넷플릭스였다”며 “넷플릭스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진정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밝혔다.

 

나 역시 의문스럽다. 가필드 부사장의 행보와 원론에 그친 답변들을 보면, 그가 말한 ‘깐부’는 그저 ‘지금의 이익을 뺏기고 싶지 않으니 양보해 달라. 우리는 깐부지 않나’라는 발언으로만 들린다. 그렇다면 지금 넷플릭스와 한국 사이에 필요한 건 ‘깐부’라는 모호한 단어가 아니다. ‘공정’이 필요하다.

 

[ 경기신문 = 유연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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