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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젖소와 부동산. 다르면서도 같은 얘기

㊷ 퍼스트 카우 - 켈리 라이카트

 

극장 한 켠에서 ‘은둔형’으로 개봉중인 미국 독립영화계의 기라성 같은 인물, 켈리 라이카트의 영화 ‘퍼스트 카우’는 제목부터 심상치가 않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첫 젖소’이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지 전혀 짐작하기 힘들게 한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 보면, '아 이런 얘기도 영화로 만들어질 수가 있구나' 하는 놀라움을 갖게 된다.

 

여기서 이런 얘기란, 말 그대로 별로 이야깃거리가 안 되는 얘기가 시나리오로 쓰여질 수 있다는 측면과 이런 이야기조차 제작과 투자가 이루어진다는 생경함 같은 감정이 복합적으로 담겨져 있다. 글쎄, 대체 어떤 투자자가 이런 ‘말도 안되는 얘기’를 ‘투자분이 회수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예술은 종종 있을 수 없는 기이한 용기의 결합에서 탄생한다. 투자와 제작, 연출, 촬영, 연기의 모든 면에서 이 영화 ‘퍼스트 카우’는 대단한 용기가 전제돼야 했을 것이다. 특히 연기자들이 놀랍다. 이런 얘기로 연기가 돼?

 

 

‘퍼스트 카우’는 19세기 미 북서부를 배경으로 한다. 퍼스트 카우. 그러니까 한 마을에 처음으로 젖소 한 마리가 들어 오게 되고 이 젖소의 젖을 두고 벌어지는 일종의 암투극이다. 코미디라고? 절대 코미디가 아니다. 실제로 생과 사를 가르는 문제가 전개된다. 여기서 19세기 미 북서부라는 시공간의 설정이 좀 중요해 보인다. 19세기 중에서도 초엽, 그러니까 1820년대나 30년대가 배경으로 보인다. 공간은 언뜻 오레곤 주 어디라고 비추어(지거나 거기서 촬영된 것처럼 보여)진다.

 

19세기 초엽은 미국의 초기 자본주의 시대다. 상업 자본주의에서 서서히 산업 자본주의로 넘어가기 전인데 1861년에 벌어진 남북전쟁 전 시절의 얘기이니 만큼 여전히 삶의 기반은 광물과 자연에서 이루어지던 때를 보여 준다. 이것이 최단 서북부 오레곤 같은 데에서는 금광이었을 것이고 미주리-캔사스 간의 중부 미주리 강 오지 같은 곳에서는 모피나 동물 가죽(예를 들어 비버)였을 것이다. 이런 삶에는 군대 무장병력들이 결합하거나 할 수 밖에 없는데 이들 노동자(근대적 수렵채취인)을 자연의 습격(재해나 맹수, 회색 곰 등)이나 인디언들의 공격에서 지켜주겠다는 취지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무장병력은 거의 대개가 결국, 해당 지역에서 무소불위 권력의 일원이 되거나 지배자가 된다. 서부시대 금광운영업자나 모피 주식회사 사장들, 장사꾼들은 무장 병력을 용병처럼 활용했다. 당시는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던 때였고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 시행되어진 때가 아니라 그걸 만들면서 가던 시대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거나 강탈하거나 약탈하고, 집단 린치를 가하는 것은 일상다반사였을 것이다. 이른바 무법지대, 무법시대였었고 사람들의 위생(치아나 손발톱), 개인 용모(의상) 등등도 지금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조악하고 끔찍했을 것이다. ‘퍼스트 카우’는 바로 그런 시대를 그리는 작품이다.

 

이른바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라 하면 건맨의 활약을 상상하기 쉽다. 존 포드 감독이 만들어 놓은 ‘역마차’의 판타지, 존 웨인이 만들어 낸 마초적 남성의 이미지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서부개척시대는 이 영화 같았을 것이다. 초라하고 더럽고 궁색하기가 이를 데 없는 ‘밑바닥’ 인생들이었을 것이다. 정면을 마주하고 결투를 벌이는 것 따위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거칠고 힘든 생활의 한 가운데에서 누군가 만담꾼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오락을 줄 요량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퍼스트 카우’의 주인공은 백인 남자와 중국인 남자 한 쌍이다. 착한 백인 쿠키(존마가로)는 일종의 주방장이자 요리사이다. 동료(라기보다는 패거리에 가까운 인간들)에게 숲에서 버섯을 따거나 다람쥐나 물고기를 잡아서 끼니를 마련해 갖다 바치는 생존의 식사 당번이다. 선한 남자 쿠키는 그래서 이름이 쿠키이다. 최소한 쿠키는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동료랍시고 그에게 먹을 것만을 보채는 남자들은 여기서의 일정이 끝나면 (금광을 채굴하던 인간들은 금이 많이 날 곳을 찾아 일정 기간을 간격으로 옮겨 다녔다. 금광채굴업자에게 고용돼 계약직 노동을 하기도 했는데 영화에서는 그 계약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쿠키를 해치고 그가 받은 배당금을 몽땅 다 뺏어 버리겠다고 대놓고 말한다.

 

쿠키는 남자들의 채근과 협박에 어두운 밤임에도 불구하고 숲에 먹을 것을 찾아 나섰다가 벌거벗은 채 숨어 있는 중국인 남자 루(오리온 리)를 발견하다. 루는 (정당방위 격)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 다니는 중이다. 착한 사마리아인 쿠키는 루를 하루 밤 숨겨 준다. 둘의 이러한 인연은 극악한 생존 환경의 혼란 속에 잠시 끊기지만 2년 후 한 정착 지대 마을에서의 우연한 재회로 다시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암소 한 마리, 젖소 한 마리가 끼어 든다.

 

이 암소는 구역 수비대장(토비 존스) 소유의 것으로 이 마을에서 딱 한 마리만 있는 것이다. 쿠키와 루는 마을 장터(라고 해 봐야 노점이지만)에 스콘을 내다 팔아서 입에 풀칠을 하며 살려고 한다. 그런데 이 스콘이라고 하는 것에는 우유가 들어가야 제맛이 난다. 쿠키와 루는 수비대장이 키우는 암소에게서 매일 밤 몰래 젖을 훔쳐 짜 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만든 스콘은 ‘대박’이 나지만 결국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라 대장에게 들키게 되고, 이들은 군인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잡히면 재판이나 판결없이 바로 죽음이다. 쿠키와 루는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이들의 눈을 피해 달아나려 한다.

 

 

19세기 초에 사람들은 금과 돈과, 젖소의 우유와, 먹을 것과, 자본주의적 탐욕의 모든 것에 게걸스럽게 달려 들던 때였다. 이건 문명이 아니라 야만의 시대였으며 인간이 인간이 아니었던 시대다. 인류에 문명이 찾아 든 것은 실제로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들을 하나하나 거침없으면서 민망하게 나열하고 있는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게 꼭 19세기 때의 이야기만은 아니지 않은가' 라는 깨달음이 다가 온다. 초첨단, 초현대의 자본주의 시대라는 지금 21세기에도 인간의 탐욕은 거의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야만하고 야만하고 야만할 뿐이다. 우리의 부동산 문제가 대표적이다.

 

‘퍼스트 카우’는 세계 최강대국이고 최고 부자 나라라는 미국이 얼마나 조야(粗野)한 건국사를 지니고 있는지, 얼마나 야만스런 역사를 밟고 올라서 있는 국가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사람은 자신과 주변의 원천(源泉)을 늘 생각하고, 그리하여 늘 성찰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원류가 어디였는지, 우리의 ‘꼴’이 원래 어떠했는지를 회고하며 사는 건,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자본주의는 여전히 문명사회로 나아가지 못했다. 인간의 탐욕은 젖소의 젖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퍼스트 카우를 어떻게 나누며 살아가야 하는가의 지혜를 얻지 못하면 그 탐욕은 반드시 비극이 된다. 쿠키와 루는 어떻게 됐을까. 수비대장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까. 우리는 과연 부동산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젖소와 부동산. 그것 참, 난제 중의 난제로소이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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