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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이 겨울의 인문학

 

 

어젯밤 늦은 시간 큰아들 친구 두 명이 찾아왔다. 예고 없이 찾아온 녀석들이 아들과 함께 거실에서 술상을 마주하고 앉아 있으니 집안이 꽉 찬 느낌이었다. 이들은 큰아들과 함께 코 흘릴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실컷 놀면서 다져온 우정이기에 반가움이 넘쳐났다. 큰아들은 외국에서 사업을 하다 코로나로 귀국했다. 그런데 그 길로 발목과 삶이 함께 묶여 세월을 허비하고 있다. 그래 저래 두 친구가 위로하겠다는 마음으로 찾아왔는데 나 또한 뵙고 싶어 들렸다고 한다. 녀석들은 이야기 도중 모두 아버지를 잃었다고 하면서 내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는데 마음이 짠했다.

 

녀석들은 50대를 바라보고 있다. 내가 이 아이들 나이 때는 오직 직장과 직업에만 몰두했다. 그 일이 최우선이요 전부였다. 부모님 모시며 세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있어 딴생각할 겨를도 여유도 경제적 물기도 없었다. 그런 마음으로 녀석들을 쳐다보니 ‘너희들도 힘들겠구나.’ 싶어졌다. 녀석들은 술이 몇 순배 돌자 내가 고향에서 교원 생활을 할 때 우리 집에서 기르던 개 이야기를 했다. 어려서부터 혼자 자란 나는 주인에게 충성도 높은 개를 좋아하며 기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얀 털이 눈부신 스피츠를 다음은 포인터, 도베르만 핀셋, 불도그를 번갈아가며 길렀다. 그런데 큰 아들은 불도그가 인상 깊게 남는다고 웃으며 말한다.

 

서재나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지혜롭고 깊은 철학이 묻어나는 문장을 보면 금방 얼굴이 펴지면서 미소를 머금게 된다. 말 못 하는 견(犬)공이 기분 좋은 먹이를 대하면 꼬리를 흔드는 격이라고나 할까. 살면서 좋은 기분 억지로 숨기며 이중성격 같은 점을 고집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근래에는 『다산의 마지막 공부』를 읽고 있다. 정조와 함께 조선 후기 개혁을 이끌었으나, 정조 사후 18년간의 유배 생활을 겪어야 했던 다산이다. 그는 마지막 공부라고 하면서 ‘죽는 날까지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힘을 다하고자 했다고 하였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학문의 끝이자 결론’이라고 노학자답게 말하고 있다. 또한 마음을 두드리는 글을 읽으며 작은 깨우침을 하루하루 쌓아간다면,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었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 참으로 귀하게 느껴지는 사상의 문장이다.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정신적 풍요로움을 위해 인문학에 빠져보면 어떨까. 나는 지금 『다산의 마지막 공부』와,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 을 읽으며 사회적 우울과 인간에게서 입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 과감히 나 자신의 새로운 길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에서다. 깊숙한 겨울의 명상 시간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한 진정한 투자와 서비스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겠다. 묵직한 가슴으로 자신의 문장을 숙성시켜가는 작가가 되기 위해 글밭을 차지게 가꾸고 싶다. 생각 같아서는 우리 집 아이와 친구들도 이 겨울에 인문학 공부에 힘쓰면서 자기 삶을 분석하고 성찰하여 삶의 새로운 길을 발견하길 기대하고 싶다. 인문학은 지식 정보의 소득뿐 아니라 삶 자체를 통찰하는 혁신적인 영혼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자기 삶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굳건히 실천해가면서 그 길에서의 행복한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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