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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부고기사에서 시작된 걸작의 영화

㊹ 프렌치 디스패치 - 웨스 앤더슨

 

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를 보고 나면 이제는 거의 사멸되다시피 한, 그래서 다소 시대착오적인 어휘들이 떠오른다. 예컨대 고색창연(古色蒼然)하다 같은 것, 혹은 경이(驚異)롭다 같은 것이다. 이 영화는 언제부턴가 사라져 가고 있는 중요한 세상의 가치, 삶의 원칙에 대한 얘기다. 무엇보다 그 회한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사라지고 있는, 폐간 직전에 놓여 있는, 한 유수의 잡지에 대한 얘기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우리 말로 약간 고쳐서 의역하면 ‘프랑스발(發) 특종’이 되겠다. 프랑스 앙뉘라는 가상도시에서 발행되며 정치·사회·문화·생활·음식과 지역에 대한 갖가지 뉴스를 다루는 고급 잡지다. 미국 캔사스 출신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인 아서(빌 머레이)는 어느 날 뜻한 바 있어 앙뉘에 왔고 ‘피크닉’이란 이름의 잡지를 인수해 지금의 ‘프렌치 디스패치’로 바꾸고 키워냈다. 그렇게 캔사스에 앙뉘를, 앙뉘에 캔사스를 가져다 놓는 일을 한다. 곧 세계를 지역에, 지역에 세계의 소식을 변증(辯證)시킨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매우 독특한 글로벌 잡지로 성장시킨다.

 

 

월간지 ‘프렌치 디스패치’는 소수의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하며 기자와 기사의 수준이 매우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들은 늘 마감이 늦거나 편집자가 요구하는 분량을 넘치기가 일쑤이며 대체로 취재 기간이 길고 비용도 대체로 과다하게 쓴다. 원래의 기획의도에서 벗어나 있는 내용일 때가 많고 원고를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데 있어 웬만해선 타협하지 않는다. 편집장은 이들을 깨지기 쉬운 보물 다루듯 한다. 하지만 그가 결국 존중하는 건 이들의 글이지, 이들 자체는 아니다.(그는 편집장실에서 울지 말 것,이란 푯말의 액자를 걸고 있다. 직원들에게 그는 때론 무자비하게 군다.) 영화의 오프닝 씬인 편집회의에서 발행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일갈한다. “난 아무도, 그 어떤 기사도 안 잘라. 인쇄 종이를 더 확보하고 페이지를 늘려!”

 

그런데 그랬던 발행인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한다. 그리고 그의 유언장이 공개된다. 당장 인쇄기를 녹이고 / 발행을 중단하며 / 직원들, 기자들에게 후한 퇴직금을 줘서 고용계약을 해지시키라는 것이다. 잡지를 영원히 종간(終刊)시키라는 것이다. 영화는 바로 그런 일이 진행되기 직전, 발행인이 기획한 이 잡지의 마지막 호 내용을, 세 가지 에피소드로 나누어 담아 내고 있다. 그런데 그 모습과 광경이 예술적 면에서 실로 너무나 고전적이면서도 원천적이고, 혀를 내두를 만큼 정교하다. 에피소드 하나 하나가 다 재미있으며 독창적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영화가 과연 어디까지 예술적이고 탐미적이며 시대를 뛰어 넘어 세기의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보려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스스로를 광기의 아티스트로 밀어 붙이는 듯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웨스 앤더슨의 이 영화가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영화예술의 가치가 얼마나 심오한 것인지, 또 심오했던 것인지, 더 나아가 심오할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사람들의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예술지향적 삶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의 시대가 얘기하는 것처럼 그다지 쓸모없지도, 또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예술이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며, 지금의 시대를 다음의 시대로 넘기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술만이 진정으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는 프롤로그 격의 작은 얘기 하나, 그리고 세개의 에피소드, 마지막 에필로그로 구성돼 있다. 마치 잡지의 전체 구성, 그러니까 에디토리얼과 커버스토리, 섹션 기사들, 편집 후기 등등인 것처럼 이루어져 있다. 앞의 작은 얘기는 로컬 담당 기자(오웬 윌슨)가 앙뉘 지역을 소개하는 것이다. 근데 이건 영화적으로 영리한 선택인데 영화 속 가상도시 앙뉘를 소개하는 척, 프렌치 디스패치란 잡지의 전사(前史)와 전사(全史), 그 개략을 훑어 주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앙뉘의 모습을 보면서 동시에 이 영화가 무슨 얘기, 어떤 사람들, 도대체 무슨 주제의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 알아채게 만든다.

 

앙뉘라는 소도시를 웨스 앤더슨의 카메라가 담아 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프레임 한 컷 한 컷이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 준다. 프레임 하나 하나가 어떻게 컷(cut)이 되고 신(scene)이 되며 시퀀스(sequence)로 이어지는지 그 역동성을 느끼게 만든다.

 

에를 들어 이런 식이다. 프렌치 디스패치 건물을 정면으로 보여주는 고정 쇼트(shot)에서 이 도시의 아침이 분주하게 시작되는 모습을 담아 내는데, 프레임 하단의 보도 블록 하수구에서 물이 콸콸 넘치면 프레임 상단 위의 건물에서 누군가 창문을 열고, 이윽고 프레임 왼쪽 중간 쯤에서는 누군가 이불을 널고, 왼쪽 아래에서는 빗자루를 든 남자가 나와 자신의 건물 앞을 쓸기 시작하면 그를 뒤따라 나온 강아지 한 마리가 프레임 왼쪽 아래에서부터 뛰기 시작해 오른쪽 아래를 지나 프레임 위로 올라가며 결국 깡충깡충 한바퀴를 도는데 그게 앙뉘 골목 한바퀴를 도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 와중에 프레임 중앙에서는 가판대가 열리고 하루의 장사가 시작된다. 바깥으로 노출돼 있는 건물의 내부 계단으로는 하인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모닝 커피와 차(茶), 담배 등이 놓여진 쟁반을 들고 바쁘게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침 회의가 곧 시작되는 것이다. 소도시의 아침 풍경이 단 하나의 컷으로, 그것도 롱 테이크 촬영 방식으로 담겨진다. 여기에 동원된 엑스트라들, 조단역 배우들은 각자의 동선과 그 합을 몇 번이나 맞추기 위해서 같은 액션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 것이다. 감독의 예술적 고집과 아집이 느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는데, 이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는 전 장면이 그렇게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잡지 본문 격에 해당하는 세 가지 에피소드는 각각 정신병동 감옥에 갇혀 사는 한 천재 화가 모세(베네치오 델 토로)와 그의 뮤즈이자 간수인 여성 시몬(레아 세이두)의 이야기다. 모세는 어느 날 눈이 뒤집혀 바텐더 두 명의 목을 잘라 살해했다. 그리고 정신병동 감옥에 들어 왔으며 종신형을 살다가 어느 날 붓을 잡는다. 여자 간수인 시몬의 나신(裸身)을 비구상으로 그려내는데, 탈세 혐의로 감방 생활을 하던 미술상 줄리언(애드리언 브로디)이 그의 그림을 세상 바깥으로 나가게 하고 모세는 일약 세계적 화가가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유명 박물관의 큐레이터(틸다 스윈튼)가 설명해 준다. 시대는 대략 1920년대쯤이고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풍의 그림이 유행하던 때이다. 잭슨 폴록 류의 ‘흩뿌리기 식’ 기법의 얘기를 풍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1960년대 파리처럼 느껴진다. 6·8혁명의 시대고 학생운동의 주역이었던 제피렐리(티모시 살라메)와 그를 취재하는 노련한 여기자 루신다(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얘기다. 6.8 혁명이 얼마나 치기 어린 것이었는지, 얼마만큼 허무맹랑한 젊은이들의 기개가 표출된 것이었는지, 그렇기 때문에 늘 이상하게도 순수하게 느껴지고 그럼으로써 시대가 지나도 항상 향수어린 대상이 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의 축소판 느낌을 준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경위 출신 셰프 네스카피에르(스티브 박)가 만드는 경찰서 요리에 대한 얘기다. 로에벅이란 기자(제프리 라이트)가 취재하는 얘긴데 기사는 엉뚱하게도 경찰서장(마티유 아말릭)의 아들이 마피아에게 납치돼 이를 구해내는 과정의 내용으로 변질된다. 그 과정에 대해 로에벅은 방송 스튜디오에 나와 MC(리브 슈라이버)와 후일담을 나누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펼쳐 낸다.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는 사망한 편집장의 유지(遺志)대로 기자들, 편집부원들, 직원들이 모여 마지막 부고 기사(obituary)를 쓰는 장면이다.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는 책 한 권의 분량으로도 설명이 부족한 작품이다. 하나의 장면에 여러 장면을 녹여냈으며 여러 장면을 하나의 느낌으로 통합시키고 있다. 한 언론사의 흥망을 얘기하는 척, 세상과 인간사의 보편성을 논한다. 그림과 음식, 청춘 연애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당연히 그 이상이기도 하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번에 뭐라 말하기 어려운,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걸작을 만들어 냈다.

 

감독 스스로가 좋아한다는 미국 뉴요커를 모델로 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일러스트는 실제 삽화가인 하비 아즈네라스가 그렸다. 걸작은 걸작을 알아보는 사람에 의해 걸작이 된다. 베네치오 델 토로에서부터 레아 세이두, 틸다 스윈튼, 리브 슈라이버, 제프리 라이트, 애드리언 브로디, 프랜시스 맥도먼드, 오웬 윌슨, 에드워드 노튼, 마티유 아말릭, 윌렘 데포, 크리스토프 왈츠, 시얼샤 로넌 그리고 티모시 살라메와 빌 머레이까지. 어마어마한 배우들이 조단역을 마다하지 않고 출연하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단언컨대 2021년 최고의 걸작이다. 2022년 아카데미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