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클루언(M. McLuhuan)은 논쟁적인 개념을 다수 제기했다. 미디어가 메시지(Medium is Message)란 통찰도 그중 하나다. 미디어 효과 이론에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메시지라는 게 정설이다. 메시지가 본질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그런데 미디어가 메시지라니 무슨 의미일까?
미디어 학자들은 미디어가 메시지의 내용을 규정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같은 사안이라도 미디어에 따라 메시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매클루언이 말하고자 한 바는 아니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역사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는 메시지가 아니라 미디어라는 인식이다. 이는 미디어의 역사가 증명해주는 진실이다. 현생 인류를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게 해 준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언어의 사용이다.
세이건과 드루얀이 공동 집필한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동물은 대체로 언어에 의한 홍보활동을 과도하게 발달시킨 자동 기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활동은 주로 그들 자신의 결함을 변명하고 약점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298쪽)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인간이라는 동물을 살펴본다면 할 법한 말이라는 가정 하에 매우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했다. 인간도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유전자 프로그램에 의해 행동하는 자동기계(생존기계)지만, 언어의 사용에 의해 차별화되었다는 것이다.
미디어로서 언어는 근원적으로 포유류의 한 종에 불과할 수 있는 인간을 호모사피엔스로 끌어올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언어로 무슨 말을 했느냐 하는 메시지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그 후 문자의 사용과 인쇄기의 발명, 그리고 전기 미디어의 등장은 메시지와 관계없이 그때마다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면서 역사의 발전을 견인해왔다.
매클루언의 얘기다. 철도의 가설이 가져온 변화는 “철도라는 미디어가 운반하는 화물이나 내용이 무엇인가와도 별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비행기는 그것이 어디에 사용되는가에 관계없이 수송을 가속화함으로써 철도에 바탕을 둔 도시, 정치, 인간관계의 근본을 흔들고 있다.”
마차보다는 자동차, 기차보다는 비행기가 인류사회의 변화의 속도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KTX는 대한민국의 공간을 수축함으로써 생활의 변화를 가져왔다. 미디어는 메시지와 관계없이 이렇게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작금의 미디어 진화의 속도는 빛의 속도를 연상케 한다. 인터넷의 대중적 보급은 종이신문의 몰락을 가져왔으며, 계속해서 SNS와 포털, 유튜브, OTT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방영된 'D.P.', '오징어 게임', '지옥' 등은 넷플릭스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모바일 미디어와 OTT, 그리고 플랫폼은 신인류를 탄생시키면서 세상을 통째로 바꾸고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메시지 이전에 미디어다. 그래서 미디어가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