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은 해방이 되던 날 과연 감격에 겨워 마음 놓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기가 내려지고 태극기가 내걸려야 할 곳에 대신 새로운 점령국 미국의 성조기가 오른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직감하고 불길한 생각을 하게 됐을 것 같다. 이 땅에서 일본인들이 물러간다는 것이 한반도 상황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됐을 터이다.
이후 이 땅의 현실은 민족의 소망과는 점차 멀어져 갔다. 아직 광복은 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전범국 일본이 패전을 했을 뿐 조선은 미, 소에 의해 분할되어 자주독립국가로의 길도 더 험난해졌다. 조국은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되돌아오지 못할 단절과 분열의 길로 들어섰고 급기야 전쟁이 발발하고 말았다. 조국은 해방된 지 불과 몇 년도 못돼 허리가 잘리고 재분단되는 비극적 운명에 빠져든 것이다.
반면 친일 반민족 세력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잠시 독립운동가 출신들이 미군정 눈에 나 정치적 위기에 몰린 순간 이들은 환호했다. 일제 조선인 고등계 순사들은 이제는 미군정의 당당한 후원을 받아 이 땅을 영원한 반공 분단국가로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군 수뇌부도 독립군 출신은 한직으로 밀려난 반면 만군과 일본 육사 출신은 승승장구했다. 언론과 재계에서 김성수-연수 형제, 방응모는 여전히 언론 사주로, 또 자본가로 사업이 번창했고, 이승만과 함께 나라의 지도자인 양 거들먹거렸다. 친일 매판관료들도 잠시 민족의 눈치를 보았을 뿐 최전선의 반공기지를 만들려는 미국에 적극 협력했고 그 대가로 고관대작의 자리를 대를 이어 지켰다.
민족에게 그 결과는 참혹했다. 이승만 정권 아래서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으로 3만여 명, 보도연맹 사건으로 30만 명이 학살되고 반민특위 강제 해산을 비롯한 숱한 반민족적 조처가 끝없이 이어졌다. 어린이들까지 이승만의 종신집권과 만수무강을 비는 노래를 불러야 했다. 박정희도 4월 혁명을 틈타 쿠데타로 집권한 뒤 종신독재자가 되려다가 피살될 때까지 18년 동안 권력을 누렸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해방공간에 이어, 4월과 5월의 햇살이 짧아 아쉬웠던 데 비해 어둠의 통치가 너무도 길었지만 80년대 광주와 이후 시민항쟁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5월 정신을 재현한 항쟁의 빛나는 성과로 우리는 세 차례에 걸쳐 민주정부를 출범시켰다. 이토록 조국의 민주주의가 가는 길은 험난하다.
그러나 여기서 희망적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나라는 점차 새로워지고 있으며, 우리 리더십도 민주개혁세력으로 교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피나는 투쟁을 거치는 동안 시민들은 독재를 지켜주는 거악이 바로 사법권력과 언론권력임을 똑똑이 알게 되었다. 감춰져 안 보이던 이 땅의 거악(巨惡)들이 시민들 눈앞에 선명해진 것이다.
민주정부의 계승과 발전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이들 개혁의 걸림돌을 제거하고 민족사적 광영(光榮)을 열어가려면 4기 민주정부 출범은 너무도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