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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대시인의 그림] 무명 독립투사의 유언

 

 

어머니!

엷은 먹물로 그린 그림처럼 당신이 보입니다.

마지막 먼 산은 이미 지워졌고

붉은 옥사가 연분홍으로 물들어가네요

이대로라면 저는 제 안의 먹방으로

고요히 가라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곳이 저의 처음 당신의 품이겠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깊고 험한 길을 돌아 당신에게 가는 길입니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네요

묶인 손을 내밀면 만져질 듯한 데까지 보입니다

보이던 것들이 안개처럼 사라지는 자리에

어머니 품에 안기는 아기

저의 모습이 짙어집니다

비로소 이별 없는 깜깜한 밤이 옵니다

눈 감지 않고 이대로

당신의 품에서 아들의 생을 멈추겠습니다

 

- 1930년 3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아들 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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