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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섬을 가다 58 - 주(酒) 조(鳥)로 유명한 관창동(官倉洞) 이야기

 주·조(酒·鳥)로 유명한 관창동(官倉洞) 이야기

 관창동은 백령면 소재지인 진촌 중심지를 지나 백령로를 따라 약 2㎞ 지점에 있으며, 진촌 두룡산고원을 지나 언덕을 내려가면서 보이는 마을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고봉포(高峰浦), 논골(畓洞, 현재 연꽃마을 테마파크 일대), 건너짝(다이소 건물 주변) 등 4개 마을을 이주시켜 만든 곳이다.

 

당시 새로 건축한 새마을집은 초가지붕 대신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꼈지만 소를 메워 돌리면서 곡물의 껍질을 벗기던 연자방아가 마을 초입에 있었던 정겨운 마을이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현재는 원래 위치에 다시 주민들이 집을 짓고 거주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 진촌4리이며, 2021년 1월 현재 55세대 122명이 거주하고 있다. 북쪽은 인당수 건너 쪽으로 황해도 장연 장산곶 뿌리가 보이고, 그 동쪽의 장연산맥을 10㎞ 거리에 두고 마주 보는 백령도 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 지명유래

 

‘관청 혹은 벼슬 관(官)’ ‘창고 창(倉)’. ‘관청의 창고’를 의미하나 언제부터 불렀는지 알 수 없다. 유래는 조선시대 첨사(僉使)가 통치하던 시대에 군량미를 비롯해 여러 군수물자를 보관하던 창고가 있던 곳으로 관아의 창고가 있어서 부른다고 전한다.

 

아울러 고봉포도 첨사 시대에 백령도에서 유일한 전용 포구였으며, 백령도의 관문으로서 황해도 장연과 기타 지방에서 출입하는 선박들은 이 포구를 이용했다. 당시 백령도가 황해도에 속해 중심 항구의 위치가 남쪽이 아닌 북을 향해 있었다는 점이다. 또 ‘관창’이 있었던 지점도 현재의 마을이 자리한 곳이 아닌 고봉포 주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건물터를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 백령도민에게 인기 많았던 관창주(官倉酒)

 

전쟁 이후 1950~60년대 먹고살 것이 없어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관창동 주민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6·25 전쟁 중 바다 건너 황해도에서 피난민을 태운 미 해군의 아구리선(LST)이 들어와 선수(船首)의 문이 열리면서 관창동 포구에 피난민이 쏟아졌다. 그러나 낙후된 어구와 어법, 간척 이전 제한된 경작지에 사람들은 넘쳐났고, 구호품에 의지하던 시절에 바닷가에 정착했던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기껏해야 고구마, 보리, 밀이 주식이었기에 불법이지만 궁여지책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 술이며, 피난민에 의해 주로 제조됐다. 이젠 반세기 전의 일로서 에피소드로 남아 있어 관창동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긴다.

 

수수와 미국서 들어온 구호품 안남미를 주재료로 만들었으며, 곡물을 깨끗이 씻어 불리고, 고두밥을 만들어 이를 누룩과 함께 혼합한 후 발효시켜 탁주를 만들고 이를 다시 가열해 돗수 높은 곡주(소주), 일명 ‘관창주’를 만들었으니 불을 붙이면 바로 파란 불꽃이 타올랐다고 한다.

 

술을 만드는 가정에서는 불을 지피기 위해 드럼통을 잘라 아궁이를 만들고, 그 위에 찜통을 걸쳐 가열하면서 술을 빚었다. 몰래 만들어 판매해야 했기에 제조 및 판매 시간은 주로 밤에 이뤄졌고, 이 술은 방울방울 모아 일본말로 도쿠리병에 담아 진촌에 팔았다.

 

아울러 진촌 읍내에서는 떼막집에서 손님에게 술을 팔았다고 한다. 떼막집은 오늘날 포장마차의 원조인 듯하다. 한편 밀주는 불법이었기에 불시에 검문하듯 검사해 적발되면 헌병대에 붙잡혀 매를 맞았으며, 일종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수시 조사 대상이 됐고, 잡혀가길 반복했다.

 

그러나 관창주의 특징은 음주 후에는 숙취(뒤끝)가 없고 깨끗해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해 지금도 백령주민에게 회자되는 추억의 명주였다. 역시 술은 뒤가 깨끗해야 예나 지금이나 애주가의 평이 좋으니 참고할 만하다.

▶ 괭이갈매기 집단 서식지

 

백령도에는 갈매기 집단서식지가 여러 곳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남쪽의 장촌 용트림 바위 해안가와 북쪽의 관창동 해안가 일대다. 관창동에 거주하는 오이봉(82) 할머니는 서식지 인근에 농토가 있어 갈매기에 대한 원망이 크다. 떼를 지어 열창하는 소음 수준의 갈매기 울음소리는 차치하고, 고구만 등 농작물의 햇순을 꺾어 놓고, 파종을 위해 애써서 씌운 비닐을 뚫어 놓기 때문이다.

 

고양이 울음소리를 닮았다 하여 부르는 ‘괭이갈매기’. 그래서 일명 ‘해묘(海猫)’라 부른다. 지뢰 표지판이 걸려있는 철조망 팬스 너머 해안가에 5월부터 10월까지 괭이갈매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집단 서식한다.

 

어미새의 경우 몸길이는 47cm, 날개를 편 길이는 약 124cm, 체중은 약 540g 정도다. 머리, 가슴, 배는 흰색, 날개 윗면과 등은 진한 회색이며 날개 끝과 꼬리 끝은 검은색이다. 부리와 다리는 노란색이며, 부리 끝에는 붉은색과 검은색 반점이 있다.

 

어린새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갈색이고, 부리는 분홍색이라서 어미새와 구별된다. 관창동의 서식 지형은 암벽으로 된 장촌 서식지와 달리 만(灣) 지형의 산지에 골고루 빼곡하게 서식하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한편 2019년 국가철새연구센터(소청도 소재)는 백령도 괭이갈매기를 연구해 텃새로 활동 범위가 섬 내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뒤집고, 중국까지 이동하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했다. 또 조류가 겨울에 월동을 위해 번식지 보다 남쪽지역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과 반대되는 이동으로 향후 괭이갈매기의 월동지역이 어디일지 주목된다고 밝혀 관창동 괭이갈매기의 새로운 이동루트를 알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태안 난도 괭이갈매기가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바 있으며, 위도가 높은 백령도와의 비교 연구 및 문화재 지정도 고려해 볼 만하다./ 김석훈 백령중고 교감·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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