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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하늘의 창(窓)] “갈리아의 수탉”들과 만난 문학과 역사

 

임헌영과 갈리아의 수탉들

 

“제 인생의 스승들은 결코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한 시대의 황혼에야 날개를 펼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둠을 뚫고 새로운 시대를 일깨워주는 새벽의 전령사인 갈리아의 수탉들이었습니다.”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한길사/2021)>의 머리말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이 책은 문학평론가로 활동해온 임헌영과 유성호 교수와의 대담집으로 연수(年數) 팔십 고개를 넘어서는 그의 전투적이자 혁명적인 삶의 전기(傳記)다.

 

제목 그대로 문학과 역사가 서로 엉키면서 직조(織造)해온 세월에 담긴 사연과 인연들은 ‘문학평론가’라는 직업군 분류로만 설명할 수 없는 실천적 지식인 “임헌영”의 치열한 인생궤적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갈리아의 수탉’들과 함께 해온, 아니 그 자신이 바로 그 ‘갈리아의 수탉’이 된 현실의 한 복판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리고 우리는 임헌형이 이 시대 또 하나의 스승이 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미네르바는 그리스 신화 아테나가 로마의 풍토와 만나 새롭게 태어난 지혜의 여신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바로 그 미네르바와 함께 다니는 이른바 신조(神鳥)이며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숲속을 날아 자신의 시간을 시작하는 성찰의 존재를 가리키는 헤겔의 철학 용어로 더욱 유명해졌다.

 

그의 <법철학> 서문에 담긴 문장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여야 날개를 편다”는 건 무슨 말인가? 그건 온갖 복잡한 현실의 쟁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던 것들이, 그 치열한 접전이 종료된 이후에야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깨우치게 된다는 주장이다. “역사 해석”을 둘러싼 논쟁의 출발이다.

 

 

그런데 <헤겔 법철학 비판>을 쓴 마르크스는 전혀 다른 각도로 사태를 바라보게 한다. 그는 “모든 내적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독일 부활의 날은 갈리아의 수탉 울음소리에 의해 고지될 것이다.”라고 외친다. 독일 부활의 날이란 혁명의 역사가 시작되는 걸 뜻하며, 이는 노을이 깔린 뒤가 아니라 수탉의 울음이 알리는 새벽이 오는 순간부터 이뤄지는 “선도적 실천”의 여정임을 일깨운다.

 

<포이에르바하 테제>에서 마르크스가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한 저 유명한 대목은 ‘갈리아의 수탉’이 무엇인지를 압축해주고 있다. 갈리아는 프랑스가 걸쳐 있는 유럽의 옛 지명으로 고대 로마의 카이사르가 남긴 <갈리아 전기(戰記)>에도 그 명칭이 적혀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갈리아의 수탉’은 프랑스 혁명의 과정에서 다시 주목받았으니 이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마르크스로서는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실천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문인간첩단”과 “남민전”의 임헌영

 

 

그런데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갈리아의 수탉’ 사이에는 단지 철학적 태세의 차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을 가르는 경계선에는 자신의 온 몸을 던져 희생할 각오를 할 것인가를 묻는 스핑크스의 질문과 닮은 “생(生)과 사(死)의 통과의례”가 기다리고 있다.

 

임헌영은 이 질문을 피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의 이름과 함께 붙어 다니는 “문인간첩단 사건”,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은 그 고난의 개인사를 증언해준다.

 

 

“남민전”으로 서른 여덟이던 1979년 옥에 갇혀 4년의 영어(囹圄)생활을 하다가 쉰 일곱이 되던 1998년에야 겨우 복권이 되었고, 서른 셋의 청년이던 1974년에 겪은 “문인간첩단 사건”은 44년 뒤인 2018년 무죄판결을 받게 된다. 이는 그의 삶이 어떤 상처와 고통, 그리고 험난한 아리랑 고개를 넘어왔는가를 그대로 보여준다.

 

 

스물 다섯 살 때인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던 임헌영은 함석헌의 표현을 빌자면 “역사의 발길에 채여” 분단이 강요한 이데올로기 통치의 사슬에 묶여 해방의 몸부림을 쳐왔다. 그러니 그가 그저 문학평론가로서의 길을 평안하게 걷는 것은 애초부터 가당치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후 그는 월간 <다리>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문학서적의 신기원을 여는 편집자의 역할을 하다가 “한길사”에서 축적된 기량을 가지고 문학, 역사 프로젝트를 펼쳤고 <역사연구소>와 <민족문제 연구소>의 책임을 맡아 문학과 역사 사이에 무수한 교량을 건설했다.

 

 

그런 까닭에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을 읽고 그 삶의 다면체를 그대로 전한다는 것은 당연히 무리다. 더군다나 그가 만나 우정을 나누고 역사의 진전을 함께 이룩한 이들은 그야말로 부지기수라 일일이 거명하기조차 버거울 정도다. 700쪽이 넘는 이 책은 그와 같은 차원에서 보자면 한국 현대사의 폭풍과도 같은 시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셈이다.

 

 

문학 , 정치 그리고 역사를 한 몸에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임헌영의 인생에서 다섯 살 안팎의 1946년 10월 일어난 이른바 “대구 인민항쟁”과 이후 그 여파로 인한 아버지와 아버지 형제의 죽음, 월북 등 가족 붕괴의 사건은 그의 평생의 “원체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가장이 없는 불안정한 집안에다가 월북자 가족이라는 딱지는 분단체제에서 살아가기 너무나 힘든 출발일 수 밖에 없다.

 

이런 그의 개인사는 한국 현대사와 뒤엉켜 씨름할 수 밖에 없도록 살게 하는, 퇴로없는 운명적 설정을 예고한다. 2020년에 그가 출간한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는 그런 의미에서 민족운동사의 관점 위에 문학과 정치가 어떻게 한 몸이 되어가는지를 해부해나갔고 그보다 앞선 2012년에 내놓은 <불확실 시대의 문학>에서는 문학이라는 영역에 갇히지 않는 문(文).사(史).철(哲) 전체를 넘나드는 필봉의 위력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이와 함께 흥미로운 대목은 그가 문학 자체의 분석이 아니라 '작가'라는 살아있는 존재와의 관계를 매우 중시했다는 점이다. 다음은 <불확실 시대의 문학>의 한 대목이다.

 

“우리 문학사는 어떤 면에서는 문학인의 모습은 숨겨두고 작품만 나열하는 게 관례처럼 되어 있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문학사란 작가의 생애와 행위와 작품, 여기에다가 문단사적인 배경까지 함께 다루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사적인 편지의 공개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세월이 지난 오늘날 그것을 읽는 이에게는 매우 재미있는 추억담이지만 이 글들이 씌어졌을 현장은 얼마나 팍팍한 삶의 고뇌들이 스며 있었던가를 밝혀내는 작업은 문학사가들의 몫일 것이다.”

 

바로 그 연장선에서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에는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과 교우관계, 작업의 기록, 역사의 전투 경험담들이 촘촘하게 실려 있다. 그래서 읽다 보면 “임헌영의 전기”를 넘어 “시대의 전기”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역사적 개인의 차원”에서 가장 올바른 전기 기술의 방식이 아닌가 싶다. 만난 이들이 곧 그 사람의 내면을 구성하는 일종의 “역사적 원소(元素)”이기 때문이다.

 

<분지(糞地)>의 남정현, <금강(錦江)>의 신동엽, <광장>의 최인훈을 그의 교우 목록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즐겁기 짝이 없는 일이며 백철, 김동리 등으로부터 리영희, 고은에 이르는 명단들은 모두 한 시대의 거대한 역사가 만들어낸 무대 위에 그가 올라섰던 기록이고 한길사 김언호의 이름까지 가세한 대목에 이르면 임헌영이 움직였던 공간은 도대체 어떤 지경인지 놀라게 된다.

 

많은 이름들이 나오지만 그의 책을 읽다가 한참을 눈길이 머물렀던 이름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박원순”이었다. 한국 근현대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연 <역사비평>의 기반인 “역사연구소”의 태동에 대해 그는 이렇게 전해주고 있다.

 

 

“1985년인가, 박 변호사와 차를 함께 탔던 게 역사문제 연구소를 탄생시킨 단초였지요. 말수가 적으면서 유머 감각이 탁월한 박 변호사가 민주화운동을 더 알차게 추진하려면 근현대사를 다룰 연구소가 절실하다고 해서 쉽게 의견의 일치를 봤습니다...그는 틈만 나면 고서점가를 누비며 책을 사들여 읽었습니다. 자신이 모은 책을 모두 역사문제연구소에 기증했지요. 한참 후에도 또 엄청난 장서를 연구소에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그는 매우 성실하고 근면하면서도 모든 회의를 민주적으로 진행, 어떤 쟁점이든 밤샘 토론을 거쳐 만장일치를 끌어내는 명수였습니다. 그는 (프랑스 혁명 때의)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의 총화이자 그들을 넘어서는 개혁과 조화의 조율사로 재평가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이제는 고인(故人)이 된 그의 오랜 친구였던 나로서는 고마운 전언(傳言)이다.

 

 

"정치혁명” 인류의 길 그리고 “갈리아의 수탉들”

 

이 책의 말미에서 임헌영은 '정치혁명'이 미래의 희망임을 힘주어 강조한다.

 

“‘정치 바로잡기’가 핵심입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정치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21세기야말로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난 게 아니라 빈부의 격차가 점점 격심해져가기에 정치혁명이 절실한데 지배층은 그걸 원천봉쇄하기에 바쁘지요. 전 지구적인 정치혁명만이 지구의 위기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그건 한 마디로 ‘온 인류의 진보화’입니다. 진보야말로 역사 발전의 기본이자 평화와 평등과 복지를 이룩할 수 있는 생존방법입니다.”

 

한 문학가가 이런 세계사적 또는 문명사적 전환의 전망을 내놓을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건 민족사의 고난을 온 몸으로 끌어안고 인류의 가치를 새기고 사는 삶의 원칙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빅토르 위고와 함께 톨스토이를 그리워하는 임헌영은 교도소에 갇혀 있을 때 익힌 러시아어로 <부활>의 첫 대목을 읽고 감격해한다. 원어로 마주하는 톨스토이의 문장들이 “직접 가꾼 채소처럼 싱싱해서 감성이 배가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 첫 장면은 어떤 것인가?

 

“몇십만의 사람들이 비좁은 곳에 모여서, 서로 밀치락달치락하며 그 땅을 못쓰게 아무리 애를 써도, 땅에서 아무 것도 돋아나지 못하게 아무리 돌을 깔아도, 작은 틈새로 싹트는 풀을 아무리 뜯어도, 석탄이나 석유로 아무리 그을려도, 아무리 나뭇가지를 베고 짐승과 새들을 쫓아버려도....봄은 도시에서도 봄이었다.”

 

임헌영의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이 책이 두루두루 읽히기를 바라면서 특히 오늘의 젊은 세대와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빈다. 그 영혼에 역사의 봄이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뿌리를 내려 자랄 것이다. 모든 부패한 것들과 모든 반역사적인 것들, 그리고 모든 반인간적이며 반생명적인 사상과 제도는 그렇게 해서 철거된다.

 

다른 누가 아닌 청년들이 “갈리아의 수탉”들이 되는 것이 진정한 미래를 여는 길이다. 그럴 때 어떤 자들이 나서서 제아무리 막으려 해도, 봄은 도시에서도 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