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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섬을 가다 63 - 백령도 진촌리 출토 검은간토기(흑도장경호)

 

 백령도의 역사와 관련해 서적이나 전시관을 관람하면 꾸준히 등장하는 유물 한 점이 있는데, 무엇일까? 백령도의 기원전 역사를 얘기할 때 반드시 조개더미(貝塚)와 함께 이 유물이 언급되는데, 이유는 유물이나 유적이 많지도 않지만 형태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이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974년 발간한 ‘考古學(3집)’에 “백령도 진촌리에서 발견, 매장문화재로 신고돼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하게 됐는데 자세한 출토 상황은 알 수 없다”고 언급되면서 알려지게 됐다. 아마도 1970년대라 하면 도굴꾼이나 고물상의 출입이 많았던 시절, 정식 조사가 아니었기에 도굴이나 수집 등 다른 방법에 의해 발견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 유물의 이름

 

유물의 이름은 검은간토기 일명 흑도장경호(黑陶長頸壺, 이하 흑도)다. 흑도장경호 한자의 뜻을 모아 보면 ‘검을 흑(黑)’ ‘질그릇 도(陶)’ ‘긴 장(長)’ ‘목 경(頸)’ ‘병(단지) 호(壺)’인데, ‘긴 목의 검은 병(단지)’이란 뜻이다. 또한 손잡이(파수, 把手)가 부착돼 있어 ‘파수부 흑도장경호’라 한다. 다시 말하면 유물에 사용된 재료와 형태를 혼합해 부른 것이다.

 

▶ 제작 기법과 형태

 

앞선 자료에 의하면 유물에 대해 “(재료인) 바탕흙은 작은 모래 입자(砂粒)가 섞여 있으나 비교적 잘 거른(精選) 흙으로 만들었다. 색조는 원래는 내외면 모두가 흑색이었을 것이나 현재는 일부만 있으며, 토기를 성형 후 흑색 물질을 바르고 갈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형태는 목이 긴 병(단지) 모양으로서 동체는 불룩한 곡면을 이루고 있으며, 바닥은 얕은 굽을 가지고 있다. 이 토기는 좌우에 1개씩 고리 모양의 손잡이가 부착된 것이 특이하며 손잡이는 (별도로) 만든 후 붙인 것으로 꾹꾹 눌러서 접착했으나 (해당 부위가) 매끈하지 않다.

 

물레(陶車)는 사용되지 않았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제작이 우수하고 표면이 세밀히 갈려있다. 입술부분(口緣部)이 일부 파손됐다. 높이는 35.5㎝, 입지름 12.7㎝, 몸체 지름 20.7㎝, 밑지름 6.3㎝, 두께 0.8㎝이다”고 서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흑도’는 바탕흙이 아주 잘 거른 흙을 사용하는(精選) 경우가 많으며 형태는 대개 손잡이가 없고 바닥이 편평한 ‘평저장경호’로 한정된다. 평저장경호 중에는 표면을 갈지 않거나 검은색 광물질을 입히지 않은 것도 많아 백령도 출토 ‘흑도’는 평저장경호의 한 종류인 셈이며 따라서 전형적인(Original) 흑도가 아닌 유사품(?)인 것으로 보고 있다.

 

▶ 제작 시기

 

첫 보고자(1974년)는 비슷한 유물이 출토된 유적들의 예로 보아 기원전 5C 말경으로 보았다. 그러나 현재는 출토 예가 많아지면서 “초기 철기 시대(기원전 300년~기원 전후)에 호남과 호서 지방 무덤을 중심으로 출토되지만, 영남 지방에서는 이보다 늦은 원삼국 시대(기원 전후~기원후 300년)에도 출토돼 기존 시기보다 늦은 시기에도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판단하는 백령도 흑도장경호의 연대는 백령도의 지리적 위치와 중국에서의 전파 경로나 제작 기법으로 보아 초창기보다는 늦지만 호남, 호서지방 유물보다 이른 기원전 5~3세기라 판단한다. 즉 시기 구분으로는 (초기)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연대로 보인다.

 

▶ ‘흑도’가 발견되는 유적의 성격

 

‘흑도’는 지금까지 발견 사례로 볼 때 무덤뿐만 아니라 집터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전형적인 것은 세형동검과 함께 출토된다는 점이고, 이 때 만들어지는 흑도가 가장 세련됐다. 결국 동반 유물의 종류와 형태, 유물출토지의 성격으로 보아 첫째 제작 시 정교한 손질이 요구되는 유물이라는 점, 둘째 일상 생활용품보다는 의식 용품 내지 제기(祭器)의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백령도 출토 ‘흑도’는 흙으로 만든 유물이 정식 조사가 아님에도 아직까지 완벽하게 남았었다는 점은 유물의 발견 지점이 ①인간의 훼손 영역 밖에 있었고 ②지하에 있어서 자연적 훼손도 없었다는 점에서 유적의 성격은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

지명에는 정체성이 깃들어 있는 것. 신석기 시대 말등과 용기 조개더미(貝塚)와 (초기)철기 시대 흑도장경호 등 인간의 흔적이 진촌 일대에서 꾸준히 확인됐고 그 결과 사람살기 좋았던 이곳이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져 정치·군사적 판단에 따라 군사시설 진(鎭)과 그 주변에 진촌(鎭村)이 형성됐다.

 

현재 백령도의 행정과 문화의 중심지이자 섬 내의 Base Camp인 진촌리! 어쩌면 진촌리의 중심적 역할은 보잘것없는 빗살무늬토기와 흑도장경호의 나비효과가 아닐까?/ 김석훈 백령중고 교감·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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