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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인민을 위해 섹스하라

57.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장철수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변수로 따지면 일종의 돌발 변수다. 예상치 못한 작품이고, 예상치 못한 내용인 데다, 예상치 못한 반응들이다. 흥행 역시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이 영화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만들어 혜성처럼 등장해 각광을 받았고, 그 다음 작품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700만 관객까지 모으며 상업적으로 성공했던 장철수 감독이 만들었다. ‘김복남’과 ‘은밀하게’는 서울 강북과 강남만큼 큰 차이가 난다. 보폭이 워낙 크게 벌어진 작품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장철수 본인도 대체적으로 돌발 변수적인 측면이 큰 감독이다. 그 역시 어디로 튈지 예상하기가 쉽지가 않다는 얘기다.

 

이미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새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개봉 전, 일부 평론가와, (별로 거론하고 싶지 않지만) 일부 네티즌, 유튜버들 사이에서 ‘싸구려 포르노’란 소리를 들었다. 동의하지 않는다. ‘포르노’란 단어는 아무 데나 막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니다. 그건 완전히 다른 세계의 얘기다. 영화의 표현 수위가 높은 것은 맞다. 섹스 신, 베드 신, 애정 신으로 극 전편이 이어진다. 근데 섹스는 이 영화의 소재를 넘어 주제이다. 주제가 섹스이기 때문에 섹스 장면이 많이 나온다. 포르노에는 주제가 없다.

 

영화의 주인공 둘 수련(지안)과 무광(연우진)은 사단장이 돌아오기 전까지 사흘간 밤낮으로 섹스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원작인 옌롄커의 소설 8장, 175쪽에 나온다. 소설 속 이름 우다왕과 수롄은 그렇게 문을 다 걸어 잠그고 사흘 동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애욕을 불태운다. 이 부분을 영화는 어떻게 묘사하나 싶었다. 그걸 눈여겨봤다. 장철수의 영화도 철커덕철커덕 문을 걸어 잠근다. 커튼도 착착 소리를 내며 차단시킨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 각자에게도 다른 각자들을 향해 칸막이를 치라고 속삭인다. 이제 뜨거운 장면을 보게 될 거야. 혼자 보라고. 저들이 왜 저러는지 잘 지켜보라고. 영화 속 수련과 무광은 집안 곳곳에서, 때로는 침대에서 때로는 식탁 위에서 또 때로는 그냥 마룻바닥에서 온갖 체위와 자세로 섹스하고 섹스하고 또 섹스한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놀랍게도 옌롄커의 원작을 거의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따라 했다는 말이 맞을 만큼 흡사하게 만들었다.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먼저 보는 사람들, 혹은 앞으로도 책까지는 읽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인물들의 대화가 심각하게 어색하다고 느낄 것이다. 예컨대 수련이 무광의 옷을 처음으로 벗기는 장면 같은 것이 그렇다. 이런 식이다. “인민을 위해 복무해야지. 어서 벗어”. 수련은 이 말을 세 번 반복하며 무광의 옷을 완전히 벗긴다. 다 벗은 무광의 몸을 보고 수련은 이렇게 얘기한다. “정말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군. 잘했어”.

 

근데 이 어투는 소설에서조차 어색하다. 로봇의 대사처럼 들린다. 보통은 이렇게 말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는 이런 대사 등등을 바꿀 줄 알았다. 그런데 장철수는 이 대목을 ‘특히’ 그대로 살렸다. 곰곰이 복구해 보면 군대에서, 병영 안에서 욕정에 들끓는 여자가 하급 병사를 유혹하기 위해서는 명령만큼 확실한 것이 없을 것이다. 이런 대목들이 어색한 이유는 특히, ‘위계에 의한 간음의 행위’가 시작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런 감정이 점점 더 애정으로 연결돼 가는 것이니 만큼 그 어색함을 피할 수 없다. 어찌 보면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제2 주제는 바로 그 어색함과 생경함이다. 개인의 관계가 됐든 사회적 관계가 됐든 혹은 그것이 정치적 관계가 됐든 변화와 혁명의 시작은 어색함과 낯섦이다. 장철수는 어쩌면 그런 대목을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지론은, 영화가 세상에 저항할 수 있는 무기란 늘 두 가지 중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는 폭력이고 또 하나는 섹스이다. 앞의 것은 미국의 샘 페킨파와 한국의 박찬욱 등이 추구하는 주제이다. 뒤의 주제는 한국 같은 경우 장선우가 ‘거짓말’ 같은 영화를 통해 비교적 선구적인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폭력 영화든 섹스 영화든, 두 가지가 한꺼번에 섞여 있는 것이든 이런 류의 영화가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당시의 사회가 억압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무언가가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는 상황, 그 힘의 세기가 너무 지나쳐 사회의 분위기가 폭발 직전까지 가 있는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사단급 병영 내에서 서른두 살의 사단장 부인과 스물여덞 살짜리 하급 병사 간에 벌어지는 욕정의 드라마이다. 여자보다 18살 정도가 많은 사단장(조성하)은 과거 항일 투쟁 때 입은 부상으로 남성성을 잃었다. 간호장교였던 여자는 남자가 그런 상태라는 것을 모르고 결혼한 것으로 영화는 묘사하지만 원작은 그걸 알고도 당에 대한 충성과 개인의 입지를 위해 선택한 것처럼 나온다.

 

장철수의 영화의 가장 특이한 대목이 바로 여기쯤에서 나온다. 옌롄커의 원작은 당연히 중국 인민 해방군의 병영에서 벌어지는 얘기로 그려지는 데 반해, 장철수의 영화는 이를 짐짓 북한 인민군으로 가져온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북한군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병들, 사단장과 간부들, 사단장 부인 모두 북한 말을 쓰지 않는다. 사병들의 내무반은 남한의 부대처럼 보인다. 사병들 간에 벌어지는 알력이나 따돌림 폭력도 남한 부대 안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진다. 장철수는 의도적으로 영화 속 군대와 군인의 모습을 모호하게 그려낸다. 중국군도 아니고 북한군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남한 병사들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없다. 시간도 그렇다. 사단장이 항일 투사였고 극 후반에 이른바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난 것을 보면 1976년 상황이지만 영화 속 이미지들은 20년 후쯤이거나 아니면 지금 현재처럼 느껴진다. 장철수는 그렇게 시공간을 뭉갠다. 그런데 그게 매우 중요한 장치처럼 느껴진다.

 

 

일종의 섹스 영화를 찍으면서 장철수는 그것을 통해 작금의 세상에 저항하고 반항하려 했을 것이다. 세상이 만들어 내는 각종의 금기(자본의 금기, 정치사회적 금기)를 뛰어넘으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칫 그 같은 태도는 매우 양가적(兩價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잘못 악용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따라서 특정 공간, 특정 시간, 특정한 상황을 드러내지 않고 뭉갬으로써, 영화의 내용을 인간 억압에 대해 저항하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보장돼야 좋은 세상이라는 일반론으로 치환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현시점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라는 의도가 읽힌다.

 

꿈과 해몽이 같든 틀리든, 장철수의 이번 영화는 지금의 한국사회가 뭔가로 콱 막혀 있음을 우회적으로 암시한다. 한국 사회 역시 문을 걸어 잠그고 커튼으로 모든 빛을 차단한 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줄곧 섹스에 탐닉하는 두 남녀 주인공처럼, 파격을 넘어 혁명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에서 수련과 무광은 당에서 받은 훈장과 상패, 지도자의 흉상, 초상화 모두를 때려 부순다. 세상이 자신들에게 짐 지운 모든 우상과 허위의식, 위선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성공을 하든 안 하든 궁극의 중요성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행위와 실천에 있는 것이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직역하면 ‘인민을 위해 섹스하라’다. 이건 존 카메론 미첼이 영화 ‘숏버스’에서 바 주인인 트랜스젠더를 통해 하는 말과 같다. 그(녀)는 이렇게 소리친다. “전쟁 말고 섹스를!” 이 영화의 섹스가 치졸하고 우스꽝스러우며 저속하고 더럽게 느껴지는가. 당신은 지금의 세상이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는가. 당신은 위선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세상의 변화를 위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폭력인가 섹스인가.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묻고 있는 대목이다.

 

수련 역의 지안은 자칫 오해받을 수 있다. 그녀의 연기가 다소 떨어진다고 느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철저하게 장철수가 의도한 연출 때문이다. 수련은 딱딱하게, 어색하게, 경계선 안과 밖에서 오가는 이미지로 그려져야 했다. 몸도 풍만하고 볼륨감 있는 쪽보다 마르고 작은 쪽이 맞다. 이번 여배우 캐스팅에 감독의 고심이 컸을 것이다. 여배우는 연기에 감정을 많이 실으려 했을 것이다. 감독은 대본대로, 대사대로 하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그 간극의 톤앤매너(Tone & Manner)를 끝까지 지키고 간다. 나중엔 그 점이 놀랍게 느껴진다.

 

원작자인 옌롄커는 자신의 소설이 중국 사회에서 문화적 역병이 되길 바랐다. 시진핑의 중국 사회에서는 의식의 혁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장철수의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역시 한국 사회의 문화적 바이러스가 될 것인가. 관객들의 선택을 유의 깊게 살펴보는 건 여러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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